한 마리 학이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고(獨鶴穿雲歸上界·독학천운귀상계)/폭포는 옥구슬처럼 구르듯 인간세상으로 흘러가네(一溪流玉走人間·일계류옥주인간)/누(累) 없는 것이 도리어 누가 됨을 알았으니(從知無累翻爲累·종지무루번위루)/마음속 산하는 보지 않았다고 말해야겠네(心地山河語不看(심지산하어불간)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시 ‘청학동(靑鶴洞)’으로, ‘남명집(南冥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이상향의 공간인 청학동을 찾아 읊은 작품이다. 선생의 시선은 신선이 타고 노닌다는 청학과 함께 하늘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청학동, 즉 불일폭포에서 쏟아진 물이 인간세상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현실의 고뇌를 잠시라도 잊기 위해 청학동에 들어왔건만, 정작 물은 인간세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초월의 공간인 청학동에 서 있는 현실 속 자신과 만나게 된다.
남명 선생은 58세인 1558년 4월 11일부터 25일까지 경남 하동 화개의 청학동과 삼신동 일대를 유람한 후 유람록인 ‘유두류록(遊頭流錄)’과 기행시를 남겼다.
필자가 강학(講學)하는 공간인 목압서사가 있는 마을 입구의 목압교 일주문 앞에 남명 선생의 ‘청학동’ 시비가 세워져 있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목압마을은 청학동으로 올라가는 초입이다. 필자가 이 마을에 들어온 것도 불일폭포와 녹차 때문이다.
선인이 쓴 지리산 유람록이 현재 100여 편 남아있는데, 저자들이 주목한 곳은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과 현재의 청학동이다. 그중 청학동은 지리산 속 이상향으로 일컬어진 공간이다. 조선 문인들은 신선 이미지를 통해 이곳에서 현실을 벗어나고자 했다.
고려 시대 이인로가 무신정변 이후 은거할 것을 결심하고 이 골짜기로 왔지만, 찾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그런 사실로 볼 때 청학동이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인식된 것은 적어도 고려 중기 이전이다.
정치 현실은 조용할 날이 없고 코로나19로 바깥 출입도 자유롭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 보자는 의미에서 신선 세계로 알려진 청학동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시인·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