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월하노인을 시켜 저승에 하소연하여(那將月姥訟冥司 나장월노송명사)/다음 세상에서는 당신과 내가 바꿔 태어나(來世夫妻易地爲 내세부처역지위)/내가 죽고 당신이 천리 밖에 살아서(我死君生千里外 아사군생천리외)/이 마음 이 슬픔을 당신이 알도록 했으면(使君知我此心悲 사군지아차심비)
‘완당전집’ 권10에 나오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시 ‘도망(悼亡)’이다. 말 그대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읊은 작품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도망시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현대에 와서도 박남수의 ‘하관(下棺)’, 도종환의 ‘봉숭아’, 신경림의 ‘비’ 등이 절절한 도망시로 알려져 있다.
추사는 왜 이 시를 지었을까? 추사는 제주도 유배 시기인 1842년 11월 18일 예안 이씨인 아내의 병을 걱정하며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추사가 편지를 보내기 전 아내는 그보다 5일 앞선 11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그 사실도 모르고 편지를 쓴 것이다. 추사가 아내의 부음을 들은 것은 한 달 더 지난 12월 15일이었다.
추사는 부음을 듣고 오열하며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시를 지었다. 외롭기 그지없는 귀양살이에 온갖 애를 다 써준 아내였으니, 오죽하면 ‘내가 죽고 당신이 나로 살았다면 내 심정을 알아줄 터인데’라고 비통해했을까? 이 대목에선 눈시울이 붉어진다.
추사는 경주 김씨 월성위 가문의 종손이었다. 그는 유배된 뒤로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음식이 맞지 않아 아내에게 민어를 연하고 무름한 것으로 가려 사 보내 달라, 겨자도 보내 달라, 어란도 구하여 보내 달라는 등 갖은 요구를 해 하인들이 추사의 본가와 제주도를 부지런히 오가며 편지와 음식, 옷 등을 전달했다.
추사는 10년 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돼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한 뒤 풀려 돌아왔다. 유배된 지 5년째인 1844년 59세 때 그 유명한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완성했다. 그의 독특한 추사체도 이 유배 시기에 확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1851년 친구인 영의정 권돈인의 일에 연루돼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됐다가 2년 만에 풀려났다.
시인·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