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那箇是做人底樣子·나개시주인저양자
“주자가 말씀하셨다. 나중에 태어나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은 우선 ‘소학’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을 만드는 틀이기 때문이다. 또 말씀하셨다. 몸을 닦는 큰 법은 ‘소학’에 갖추어져 있고, 의리의 정밀하고 미묘함은 ‘근사록’에 자세히 말하였다.”
朱子曰. 後生初學, 且看小學書. 那箇是做人底樣子. 又曰. 修身大法, 小學書備矣. 義理精微, 近思錄詳之.(주자왈. 후생초학, 차간소학서. 나개시주인저양자. 우일. 수신대법, 소학서비의. 의리정미, 근사록상지.)
위 문장은 ‘소학집주 총론(小學集註總論)’에 나온다. 알다시피 ‘소학’이라는 책은 중국 송나라 때 주자(주희·1130~1200)가 학동들에게 공부의 기본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책이다.
조선 시대에 향교와 서당 등 교육기관의 필수교재로 사용됐으며,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 도리와 도덕의 원리가 집약되어 있다.
그래서 주자가 인간을 금수와 달리 인간답게 만드는 법이 담겨 있는 책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흔히 ‘소학은 동양의 탈무드’라고 일컬어진다.
예전의 공부는 소학에서 시작해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 사서삼경 및 역사서 등의 더 넓은 공부로 나아가 큰 선비가 되면 ‘근사록’을 읽었다. 물론 초등 교육기관에서 바로 소학으로 들어가기에는 어려워 ‘천자문’과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을 배웠다.
조선 초기에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을 위시한 김굉필·정여창·조광조 등 사림파가 소학을 중시함에 따라 이 책은 그들의 상징서가 됐다. 김종직이 부관참시(무오사화)되고, 김굉필(갑자사화)·조광조(기묘사화) 등이 처형되면서 소학은 금서(禁書)가 되기도 했다. 소학이 당파적 성격을 띤 책으로 규정된 아이러니였다.
옛사람이 소학을 끼고 살았던 건 스스로 마음을 항상 다잡고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이제는 개인적인 능력·권력·재산 등이 무엇보다 우선되다 보니, 이 책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혔다.
시끄러운 요즈음 부모와 형제, 친구, 이웃 등을 배려하며 살아야 된다는 수신서(修身書)인 소학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다.
시인·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