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惆悵餘生歸來歸·추창여생귀래귀
일흔 살의 가엽고 기력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라 (七十哀翁氣力微·칠십애옹기력미)
턱 괴고 힘쓰며 앉아있지만 옷 무게도 버겁다네 (支頣强坐不勝衣·지이강좌불승의)
흐르는 세월 빠르고 몸에 병이 많아지니 (流年忽忽身多病·유년홀홀신다병)
서글픈 남은 생애 돌아갈 수 있으려나 (惆悵餘生歸來歸·추창여생귀래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문집 ‘청음집’에 실린 시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야좌·夜坐)’이다. 청음이 중국 심양의 옥에 갇혀 쓴 시다. 그는 어찌하여 갇혔을까?
1636년 12월 1일 청나라 태종이 12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조선을 침략했다. 병자호란이다. 청나라 군사들이 강화도로 통하는 길을 막자 당황한 조선 16대 왕 인조는 맏아들 소현세자와 백관을 대동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청음은 척화론을 주장하며 결사항쟁을 역설했으나, 인조는 이조판서 최명길을 주축으로 한 화친론에 동조했다.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남한산성 성문을 열고 삼전도로 가 청 태종 앞에서 이른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행하고, 치욕적인 ‘성하(城下)의 맹약’을 맺었다. 삼배구고두란 세 번 절하면서 한 번 절할 때마다 세 번 머리를 내리찧는 굴욕적인 예였다.
이후 청음은 안동 풍산에 은거했는데 1639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려고 조선에 요구한 출병에 응한다는 소식을 듣고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압송돼 옥에 갇혔다. 그때 이 시를 지었다. 병들어 고향에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그는 심양에서 청 황제가 있는 쪽을 향해 절을 하라는 요구에 끝까지 거부하는 등 옥중에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의 사평(史評)에서 중국 역사상 최고 충신으로 꼽는 문천상(文天祥)에 견줄 만큼 청음의 절의를 높이 평가했다. 이덕무는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인물을 들며 덕(德)으로 퇴계 이황, 전략으로 충무공 이순신, 절의로는 청음 김상헌을 꼽았다. 선비로서 대쪽 같은 자세를 분명 높이 살 만하다. 시인·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