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其表狀書啓傳之至今·기표장서계전지지금
“이때 황소가 반란을 일으키므로 고병은 제도행영병마도통이 되어 이를 토벌했는데, 최치원을 불러 종사관으로 삼아 서기의 책임을 맡기니, 그 문장이 뛰어나서 지금까지 전한다.” (時黃巢叛·시황소반, 高騈爲諸道行營兵馬都統以討之·고병위제도행영병마도통이토지. 辟致遠爲從事·벽치원위종사, 以委書記之任·이위서기지임, 其表狀書啓傳之至今·기표장서계전지지금)
위 문장은 고려 김부식(1075~1151)이 지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46, 열전6, ‘최치원전·崔致遠傳')에 나온다. 고운 최치원(857~미상)이 황소의 난에 고병의 종사관이 되어 많은 글을 지었고, 그 글이 지금까지 전해온다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글이 잘 알려진 ‘격황소서(檄黃巢書)’, 즉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다.
고려 말 백운 이규보(1168~1241)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22에서 더 구체적으로 썼다. “고운이 열두 살에 바다를 건너 당나라에 들어가 유학하고 단 한 번에 갑과에 급제하여, 고병의 종사관이 되어 황소에게 격문을 보내니 황소가 읽다가 기가 질리고 말았다.”(崔孤雲年十二·최고운연십이, 渡海入中華遊學·도해입중화유학, 一擧甲科及第·일거갑과급제, 遂爲高騈從事·수위고병종사, 檄黃巢巢頗沮氣·격황소소파저기)
토황소격문은 최치원이 지은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20권 중 제11권 첫머리에 수록돼 있다. 당나라 말인 875∼884년 일어난 황소의 난 때 그에게 항복을 권유하기 위해 지은 격문이다. 이때 황소에게 장안이 함락돼 당나라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다.
특히 황소가 이 격문을 보다가 “하늘 아래 사람들이 모두 드러내 놓고 죽이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땅속의 귀신들도 이미 살그머니 죽이자고 의논했다” (不唯天下之人·불유천하지인, 皆思顯戮·개사현륙, 抑亦地中之鬼·억역지중지귀 已議陰誅·이의음주)고 한 구절에 이르러 자기도 모르게 놀라 마루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이를 계기로 최치원이 문장가로서 중국에 널리 알려졌다 한다. 최치원은 귀국 후 말년에는 권력에서 밀려나 가야산과 부산, 지리산 등을 방랑하며 살았다.
시인·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