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정미). 영가대에서 바다의 신에게 제사하였으니 예부터 내려온 전례이다. … 전폐례를 행하되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대야에 손을 씻고 남쪽 계단으로 올라가 꿇어앉아 분향했다. 대축이 폐백 광주리를 들이자 헌관이 이를 받아 신위 앞에 놓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동쪽 계단으로 내려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에는 초헌례를 행하되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역시 처음과 같이 손을 씻고 술이 있는 곳에 가서 잔을 살펴보고 재랑 이하가 잔을 들고 헌관을 따랐다. 신위 앞에 이르러 술을 받들어 올린 뒤 헌관이 조금 물러나 엎드리자 대축이 종헌관의 왼쪽에 꿇어앉아 축문을 읽었다 ….”
初六日丁未. 禱海神于永嘉臺, 申舊例也.…行奠幣禮, 謁者引初獻官盥洗, 由南階躋跪上香. 大祝進幣篚, 獻官執而奠, 俯伏興, 從東階降復位. 次行初獻禮, 引盥洗如初, 就奠所省爵, 齊郞以下執爵而隨之. 至神位前奉獻, 獻官小退跪, 大祝終獻官之左讀祝. (초육일정미 도해신우영가대 신구례야 … 행전폐례 알자인초헌관관세 유남계제궤상향 대축진폐비 헌관집이전 부복전 종동계강복위 차행초헌례 인관세여초 취전소성작 재랑이하집작이수지 지신위전봉헌 헌관소퇴궤 대축종헌관지좌독축.)
1719년(숙종 45) 통신사행의 제술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신유한(申維翰·1681~1752)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해유록(海遊錄)’에 나온다. 위 문장의 ‘알자’는 안내자(도우미), ‘대축’은 축문 읽는 일을 맡은 사람, ‘재랑’은 향로를 받드는 사람이다. 영가대는 조선 후기 통신사를 비롯한 대일 사신들의 무사 항해를 기원하며 해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해신제당이었다. 또한 전쟁 포로나 표류인의 귀환 지점이었다. 영가대는 바다가 보이는 자성대 남쪽에 세워졌으나, 1917년 전차 부설 때 철거됐다. 지금 부산진시장 뒤 성남초등학교 옆 철로 변이다.
신유한은 문장으로 이름났던 문신이다. 해신제를 올리는 장면의 일부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했는지 놀랄 따름이다. 해마다 열리는 ‘조선 통신사 축제’ 기간 영가대 해신제를 재현하는 행사를 하고 있어 다행이다 싶다.
시인·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