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은 강을 가고 이레는 산을 가니(三日江行七日山·삼일강행칠일산)/ 열흘의 발자취가 강과 산뿐이네.(一旬蹤迹是江山·일순종적시강산)/ 강과 산이 모두 다 가슴 속에 들었으니(江山盡是胸中物·강산진시흉중물)/ 맑은 강을 노래하고 청산을 노래하네.(咏出淸江咏出山·영출청강영출산)”
조선조 숙종 때 괄허(括虛·1720~1789)선사의 ‘괄허집’에 나오는 칠언절구 ‘운수승송(雲水僧頌·운수승의 노래)’이다.
구름처럼 떠돌고 물처럼 흘러가며 운수행각(雲水行脚)하는 탁발승을 보기가 드문 시대다. 스님들은 만행(萬行)하면서 제방을 순력하며 수행했다. 인욕의 정신을 키우고 하심을 배워 일체 집착에서 떠나기 위한 수행의 한 방편으로, 치열한 정진이다.
원래 운수행각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모든 수행을 통틀어 일컫는 만행의 하나이다. ‘법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에서는 “만행의 시작은 계율로써 근본을 삼고, 만행의 끝은 깨달음으로써 결과를 삼는다”고 했다. 따라서 수행자에게는 일생이 만행의 연속이 되는 생활이다.
초기 율장에서는 한곳에 사흘 이상 머물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말한 까닭은 한곳에 오래 머물면 정이 들고 애착이 생겨 해탈을 얻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납자들의 운수행각은 끝없는 역정이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언제나 지체 없이 훌쩍 떠나는 무애행이다. 괄허 선사의 시 내용처럼 강과 산은 말할 것도 없이 넓은 대지, 촌락의 좁은 구석까지 납자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운수송(雲水頌) 중에서는 중국 후량의 선승인 포대(布袋)화상의 그것이 유명하다. “바리때 하나로 이집 저집 밥을 빌며(一鉢千家飯·일발천가반) / 외로운 이내 몸 만 리 길을 떠도네.(孤身萬里遊·고신만리유)/ 푸른 눈 알아보는 이 드무니(靑目覩人少·청목도인소)/ 흰 구름에게 갈 길을 묻네.(問路白雲頭·문로백운두)”
조계종 쌍계사 바로 옆에 은거하는 필자를 찾아온 지인이 “요즘처럼 혼란한 때는 차라리 산문에 갇혀 지내거나 운수행각하는 스님이 부럽다”고 말했다. 힘든 만행을 하며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이 들으면 “예끼” 고함칠 일이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