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暗香浮動月黃昏·암향부동월황혼
뭇 꽃들 졌어도 홀로 곱게 피어선(眾芳搖落獨暄姸·중방요락독훤연)/ 작은 정원의 아름다운 정취를 독차지하네.(占盡風情向小園·점진풍정향소원)/ 그림자 비스듬히 맑은 물 얕은 곳에 비껴 있고(疏影橫斜水凊淺·소영횡사수청천)/ 그윽한 향기는 황혼 무렵의 달빛 속에서 풍겨 오네.(暗香浮動月黃昏·암향부동월황혼)/ 서리 같은 흰 학 내려오려다 먼저 눈치 보고(霜禽欲下先偸眼·상금욕하선투안)/ 분 같은 흰 나비가 안다면 마땅히 애를 끊으리라.(粉蝶如知合斷魂·분접여지합단혼)/ 다행히 나지막히 시 읊조려 서로 친할 수 있으니(幸有微吟可相狎·행유미음가상압) /단목 악기나 금 술잔 모두 필요치 않다네.(不須檀板共金尊·불수단판공금존)
중국 송나라 임포(林逋·967-1028))의 시 ‘산원소매(山園小梅·산 정원의 작은 매화)’로 ‘임화정집(林和靖集)’ 권2에 실렸다. 임포는 40세 전후에 중국 항주 서호(西湖) 부근 고산(孤山)에 은거해 ‘매처학자(梅妻鶴子)’를 자처하며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 삼아 살았다. 일생 독신으로 매화 300그루를 심고 학 두 마리를 기르며 20년간 성안에 들지 않고 풍류 생활을 했다. 매화 시인으로 불릴 만큼 매화를 노래한 작품에 걸작이 많다. 13세기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한 바 있다고 한다. 항주는 중국 4대 미인(서시·양귀비·초선·왕소군) 중 서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소동파의 시 ‘吟湖上初晴後雨(음호상초청후우·서호의 개고 비 오는 경관을 읊음)’등 많은 시인이 서호를 시로 읊었다.
이 시 첫 구에서 추위를 견디고 핀 매화가 다른 꽃이 아직 피지 않은 가운데 단연 눈에 띈다고 했다. 둘째 구에서 달빛 받은 매화가 잔잔한 물에 비치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매화 향기가 더욱 두드러짐을 나타냈다. 첫 구는 매화의 고고한 자태를, 둘째 구는 매화의 속성을 표현했다. 시인들은 특히 이 두 구를 높이 평가한다.
오늘 필자는 차(茶)산에 올라가 낫으로 억새와 가시를 베어냈는데 오후가 되니 성질 급한 매화나무 한 그루가 하얗게 꽃을 다 피워버렸다. 매화를 보며 일하는 내내 즐거웠다. 해마다 매화 철이면 혼자 차산에서 황홀해한다.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