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99> 고추잠자리 보며 가을이 왔음을 느낀 이규상

높아지는 하늘 마른 햇살에 가을이 생겨나네(雲高日燥見秋生·운고일조견추생)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1-08-17 18:56:34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맨드라미 오뚝하고 봉선화 기울었는데(鷄冠逈立鳳仙橫·계관형립봉선횡) / 표주박 넝쿨엔 붉은 가지가 얽혀 있네.(瓠蔓笳莖紫翠縈·호만가경자취영) / 한 떼의 고추잠자리 왔다 가니(一陣朱蜻來又去·일진주청래우거) / 높아지는 하늘 마른 햇살에 가을이 생겨나네.(雲高日燥見秋生·운고일조견추생)

18세기의 시인 이규상(李圭象·1727~1799)의 시 ‘농가의 노래(田家行)’로, 그의 저서인 ‘일몽고(一夢稿)’에 수록돼 있다. ‘일몽고’는 18세기 조선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망라한 인물지로, 조선 후기 인물들에 관한 충실한 기록으로 꼽힌다.

시인의 집에는 빨간 맨드라미와 연분홍색 또는 빨간색의 봉선화가 피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푸른 박 넝쿨이 늘어져 있고 거기에 자줏빛 가지가 엉켜 달려있다. 시골의 여름날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고요한 풍경에 한 떼의 고추잠자리가 몰려와 선회하다가 어디론가 가버린다. 이때 시인의 시선은 하늘로 향한다. 마른 햇살이 비치고 뭉게구름 사이로 하늘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다. 푸른 하늘이 곱다. 시인은 “아, 가을이 어느덧 이렇게 와 있구나”고 느낀다.

고추잠자리는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전령이다. 요즘은 시끄럽게 우는 매미보다 고추잠자리가 더욱 반가운 때다.

계곡에는 빨간 잠자리가 물을 치느라 바쁘다. 잠자리가 물을 치면서 나는 것을 ‘청정점수(蜻蜓點水)’라고 한다. 선비들은 벼슬과 이익의 유혹에서 몸을 빼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것을 두고 청정점수에 비유했다.

서거정은 ‘가을 생각(秋懷·추회)’이라는 시에서 “잠자리는 늦은 시간 햇살에 어지럽고(蜻蜓迷晩色·청정미만색) / 귀뚜라미는 시원한 소리를 보내오는구나.(蟋蟀送寒聲·실솔송한성)/ … / 귀향만큼 좋은 것 없으리니(不如歸去好·불여귀거호)/ 어찌 명성을 지키려고 하겠는가.(何用占時命·하용점시명)”이라고 읊었다.

잠자리 떼 나는 것과 귀뚜라미 소리를 보고 듣고 돈과 명예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뜻을 피력했다. 가을이 오는 것을 알리는 잠자리를 보고 돈과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날 것을 생각한 것이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격물(格物), 그것이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도청도설] 발가벗겨진 사우디
  3. 3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4. 4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5. 5[시민기자] ‘핑크 가을’ 내려앉은 대저생태공원
  6. 6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7. 7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8. 8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9. 9이번에는 진짜 가야할 때…‘부캉이’ 다시 바다로 보낸다
  10. 10[뭐라노] 금양 부활할까
  1. 1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2. 2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3. 3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4. 4[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北 적반하장 용납 못해…추가 도발 감행시 단호하게 대응”
  5. 5"법령 검토해 결정하겠다"던 김지용 중수청장, 국무회의 참석
  6. 6[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7. 7여도 야도 시중은행 연쇄 해킹 사태 집중 질타
  8. 8이 대통령, "생애 첫 연금 지원사업 신청한 사람만? 실질적 불평등"
  9. 9통일부. 北 대남확성기 재개 위협에 “문제 해결 노력에 호응” 촉구
  10. 10이 대통령 "관행·절차 얽매이지 말고 주택 공급 전격전 펼치길"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뭐라노] 금양 부활할까
  3. 3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4. 4내년 주목할 세계 여행지 톱10에 부산… 국내 유일
  5. 5부산 명물 삼진어묵, 상하이 입맛 잡는다
  6. 6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7. 7"원전 사업자 한수원, '안전 미준수' 과징금만 5년간 338억원"
  8. 8선원노련 김두영 위원장, ITF(국제운수노련) 집행위 선출
  9. 9“사업비 턱없이 부족”… BS한양, 가덕도신공항 컨소시엄 탈퇴 의사 밝혀
  10. 10이번엔 할리스…고객 개인정보 276만 건 유출(종합)
  1. 1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2. 2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3. 3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4. 4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5. 5이번에는 진짜 가야할 때…‘부캉이’ 다시 바다로 보낸다
  6. 6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7. 7“미래대응기금 조성, 교부세 축소 안 돼”
  8. 8양산시, 종합장사시설 후보지 오룡마을 선정…2030년 말 준공 목표
  9. 9어린이집 앞 석면지붕 빼곡…소유주들 빈집 등 이유로 방치
  10. 10상습 음주운전 꼼짝마…후 불어야 시동 걸린다
  1. 1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2. 2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3. 3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4. 4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5. 5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6. 6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7. 7‘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8. 8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9. 9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10. 10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