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蓬萊仙人却是未風流·봉래선인각시미풍류
송산 자하동에 집이 있고(家在松山紫霞洞·가재송산자하동)/ 중화당은 구름과 안개 서로 맞닿네.(雲煙相接中和堂·운연상접중화당)/ … / 한잔 술에 천 년의 수명 얻을 수 있으니(一杯可獲千年·일배가획천년)/ 한잔 또 한잔 드시옵소서.(願君一杯復一杯·원군일배부일배)/ … 월류금으로 ‘태평년’ 연주하니(月留琴奏太平年·월류금주태평년)/ 공들께서는 많이 드시고 취하는 것 사양치 마시길(願公酩酊莫辭醉·원공명정막사취)/ 인생이란 술 단지 앞처럼 좋은 곳 없다오.(人生無處似尊前·인생무처사존전)/ … / 백발에는 꽃을 얹고(白髮載花·백발재화)/ 금 술잔 손에 잡고 서로 술을 권하니(手把金觴相勸酒·수파금상상권주)/ 봉래산 선인도 풍류가 이보단 못할 것이오.(蓬萊仙人却是未風流·봉래선인각시미풍류)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찬성사(贊成事)·삼사사(三司使) 등을 지낸 관료이자 문신인 채홍철(蔡洪哲·1262~1340)의 시 ‘자하동(紫霞洞)’으로 ‘고려사’ 71권 악지(樂志)에 전한다. 그는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개성 송악산 아래 자하동에 집을 지어 책과 거문고를 즐기며 살았다. 집 남쪽 경치 아름다운 곳에 별채를 지어 중화당(中和堂)으로 이름하고 음악회를 자주 열었다. 위 시 초봄 어느 날 읊었다. 중화당에 영가군(永嘉郡) 권부(權溥·1262~1346)를 비롯한 국가 원로 여덟 명을 초청해 음악회를 열었다. 그 내용은 ‘고려사’ 열전 21, 채홍철 편에 나온다.
이날 행사에 노래 두 곡이 준비됐다. 한 곡은 음악인들이 준비한 당악 ‘태평년’이었다. 이 곡은 당시 국가 행사나 귀족이 모인 자리에서 많이 연주됐는데, 현악기 월류금이 반주했다. 또 한 곡은 채홍철이 직접 부른 노래로 대곡(大曲)의 하나인 ‘만년환(萬年懽)’이었다. 그 노랫말은 ‘고려사’ 악지에 나와 있다. 채홍철은 이때 지은 시로 음악을 작곡했는데, 그 악보는 ‘대악후보(大樂後譜)’ 권 7에 전한다. 이날 행사의 화려함은 짐작되는 바, 봉래산의 신선이 부러워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목압서사 맞은편 마을에 사는 거문고 연주가인 율비 김근식 선생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거문고를 사랑한 시인이자 음악가 채홍철이 떠올랐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