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山高月上遲·산고월상지
달이 뜨면 오시겠다던 낭군님(郞云月出來·낭운월출래)/ 달이 떠도 낭군님은 안 오시네.(月出郞不來·월출랑불래)/ 생각해보니 응당 임 계신 곳은(想應君在處·상응군재처)/ 산이 높아 달이 늦게 뜨리라.(山高月上遲·산고월상지)
능운(凌雲·생몰년 미상)의 시 ‘낭군님을 기다리며’(대랑군·待郎君)로, ‘대동시선(大東詩選)’에 있다. 대동시선은 1918년에 장지연이 고조선부터 한말까지 우리나라 역대 시를 시대 순으로 모아 엮은 시선집이다. 능운은 기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엔 정보가 없다. 위의 오언절구 시 한 수로 이름이 남았다. 오언절구는 짧아서 오히려 해석이 더 어렵다. 스무 자 안에 깊은 뜻을 다 담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낭군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움을 읊은 시이다. 예전 기생들은 대개 벼슬아치나 양반들과 하룻밤 사랑을 많이 나누었다. 신분상 차이 때문에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예는 극히 드물었다. 순정이 많은 기녀는 하룻밤 함께 지낸 임을 잊지 못해 평생 가슴에 안고 사는 경우도 있었다. 시를 지을 줄 아는 기생은 애끊는 심정을 시로 남겼다.
임은 달 뜨면 오겠노라고 약속을 하며 떠난 모양이다. 달이 떠도 임은 안 오신다.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임이 철석같은 약속을 하고 떠나지 않았던가. 잊었을 리 없다. 그분만은 믿는다. 그 사람 인품이 그러해서다. 그래서 생각한다. 그분 계신 곳의 산이 여기보다 높아 달뜨는 게 늦은 때문일 게다. 달 뜬 걸 알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오시리라. 나를 언제까지나 기다리게 하실 분이 아니다. 시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녀는 마음을 모두 모아 낭군을 기다린다. 너무나도 약한 처지인 그녀의 그 작은 마음을 읽는 필자의 마음이 아프다. 아마 그녀의 나머지 삶이 대충 짐작되기 때문일지 모른다.
지금 필자는 하동 악양면소재지 아주 작은 카페에 몇 시간째 앉아 능운의 시를 읽고 가슴 저미며 글을 쓰고 있다. 인근에 ‘그리움의 시인’ 박남준 시인이 산다. 그 마을까지 필자를 태워 갈 지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와 그리움이란 감정을 가슴에 가득 담은 채 말이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