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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75> 이광사가 종형제에게 보낸 간찰

하지만 남은 우환 있을 게 분명해 답답하기만 하네(當有餘憂 可悶·당유여우 가민)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2-05-29 19:14:08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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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소식이 막혀 있던 차에 서신을 얻게 돼 매우 위로가 되네. 이곳은 우환이 다섯 달이나 지속되다가 지금에야 조금 나아졌네. 하지만 남은 우환이 있을 것이 분명해 답답하기만 하네. … 나머지는 갖추지 못하네. 도보.

積阻中得書殊慰. 此中以憂患五閱月, 今始少差, 當有餘憂, 可悶. … 不具 卽 道甫(적조중득서수위. 차중이우환오열월, 금시소차, 당유여우, 가민. … 불구 즉 도보)

18세기에 서화가로 이름을 떨친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가 종형제에게 보낸 간찰(편지) 앞부분이다. 도보는 이광사의 자이다. 1755년 이전, 처가가 있던 전라도 나주에서 종형제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에게 닥칠 재앙을 예견한 듯 말하고 있다. 그가 51세 되던 1755년(영조 31) 일어난 을해옥사 때 큰아버지 이진유(李眞儒·1669~1730)에게 연좌돼 7년간 함경도 부령에서 귀양을 살다 전남 진도로 옮겨졌다 강진 약산도로 유배됐다. 1777년 약산도에서 죽었다 하나 일부 기록에는 진도에서 죽은 것으로 돼 있다.

이광사 집안은 소론 명가였다. 1725년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중용되고 소론이 실각하자 집안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부친 이진검은 1721년 노론 대신 이이명을 탄핵했다가 밀양·강진으로 유배됐다. 큰아버지 이진유는 1724년 사절단 부사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체포돼 나주로 유배됐고, 추자도 등으로 이배됐다가 1730년 문초를 받다 곤장에 맞아 죽었다.

어제 부산에서 온 벗들과 필자가 은거하는 화개골에서 구례 천은사에 들렀다. 천은사 일주문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 글씨와 극락전 ‘극락보전(極樂寶殿)’ 현판 글씨를 봤다. 모두 이광사가 썼다. 임진왜란 뒤 절을 중건할 때 샘에서 구렁이가 나오자 죽였더니 그 뒤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절 이름을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泉隱寺)’로 바꿨다 한다. 그 뒤로 화재와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천은사 주지가 명필 이광사에게 글씨를 청했다.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 현판을 물 흐르는 것 같은 서체로 써서 걸자 재앙이 그쳤다. 이광사의 현판 글씨는 과연 물이 흐르는 듯한 율동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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