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55> 아둔한 김득신이 사기 술잔을 좋아하는 이유

술맛이 묘했는데, 술잔 때문이었으니(酒味之玅, 酒盃之故也·주미지묘, 주배지고야)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03-21 19:08:56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어제는 나의 생일이었다. 벗들을 집에 불러 이 술잔에 술을 부어 함께 마셨다. 술맛이 묘했는데, 술잔 때문이었으니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昨日, 余之生朝也. 集朋友于堂, 以此盃酌而共飮之. 酒味之玅, 酒盃之故也, 何敢不愛.(작일, 여지생조야. 집붕우우당, 이차배작이공음지. 주미지묘, 주배지고야, 하엄불애.)

위 문장은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1604~1684)의 수필 ‘사기 술잔 이야기(沙盃說·사배설)’로, 그의 문집인 ‘백곡집(柏谷集)’에 들어있다.

알다시피 김득신은 어릴 때 앓은 천연두 후유증으로 몹시 노둔해 공부하는 게 너무 느렸다. 하지만 읽고 또 읽어 39세(1642)에 진사시에 겨우 붙었고, 대과도 59세(1662)에 끄트머리쯤에 합격했다. 그가 읽은 글의 횟수와 목록을 기록한 ‘독수기(讀數記)’를 보면, ‘백이열전(伯夷列傳)’은 무려 1억1만3000번이나 읽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서재 이름을 ‘억만재(億萬齋)’로 지었다. 이 코너에서 김득신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필자는 가끔 그의 글을 읽으며 어리석은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번 문장은 김득신이 술 마실 때 사기 술잔을 선호한 이유에 대한 내용이다. 필자도 사기 술잔을 몇 개 가지고 있다. 퇴직한 필자의 남동생이 최근 목압서사에 와 함께 지낸다. 동생이 반주로 막걸리를 마실 때 이 술잔을 쓴다. 필자도 사기 술잔을 좋아한다. 술잔 바깥에 한자로 ‘壽(수)’·‘福(복)’·‘康(강)’·‘寧(령)’ 글자가 쓰여 있기 때문이다. 술잔에 적힌 이런 글자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동생은 요즘 약간 납작하지만 안쪽 바닥에 ‘福’(복)이 적힌 술잔으로 막걸리를 마신다.

김득신의 위 문장은 전체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 앞은 자신을 거쳐 간 사기 술잔에 대한 내용이다. 아끼던 사기 술잔을 큰아들이 깨뜨렸고, 다시 구한 사기 술잔은 여종이 깨뜨렸다. 세 번째 술잔은 다른 여종에게서 얻은 것이다. 그가 놋쇠 술잔보다 깨지기 쉬운 사기 술잔을 사랑하는 이유는 술맛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 번째 술잔은 아직 깨지지 않았지만 언제 깨질지 몰라 불안하다고 하는 그의 느린 마음이 읽힌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3. 3부산국제영화제 11년 만에 ‘관객 20만’ 재돌파
  4. 4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5. 5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6. 6[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7. 7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8. 8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9. 9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10. 10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1. 1[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2. 2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3. 3‘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4. 4北 "전날 동해서 2종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
  5. 5신임 靑 비서실장에 임광현 국세청장(종합)
  6. 6김민석 격주 부산행 PK 민심잡기…부마항쟁 기념식 찾는다
  7. 7이 대통령 "부마항쟁 헌법 조문화, 이제는 실천할 때"
  8. 8김민석, 강훈식 서울시장 후보론에 “가능성 열려있다”
  9. 9李 대통령 지지율, 2주 전보다 소폭 오른 44%…부정 평가 49%
  10. 10김지용 “정치검사 1호는 尹”…과거 행적 놓고 與 집안싸움(종합)
  1. 1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2. 2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3. 3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4. 4‘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5. 5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6. 6모건스탠리 “고물가 고착화 위험에 한은 내달 금리 올릴 듯”
  7. 7AI 투자 회의론 고개…글로벌 반도체주 ‘먹구름’
  8. 8부산항에 석유 보세구역…북극항로 선박연료 생산·공급
  9. 9커피향 가득한 미래 작가들 ‘사랑방’
  10. 10주가지수- 2026년 10월 15일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3. 3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4. 4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5. 5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6. 6“장림항 레저보트 철수명령 정당” 대법 확정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6일
  8. 8예고 임용강사·학원장 겸직, 전국서 부산예고 가장 높아
  9. 9거짓자백 받았나…法, 17년전 ‘창원 택시기사 살인’ 재심청구 인용
  10. 10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 배재정 전 의원 실형 구형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5. 5[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