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指頭何忍洗餘香·지두하인세여향
버드나무 늘어진 빨래터 시내 옆에서(浣紗溪上傍垂楊·완사계상방수양)/ 백마 탄 임과 손을 잡고 속삭였네.(執手論心白馬郞·집수론심백마랑)/ 삼월 봄비 그치치 않고 처마에 떨어지는 빗물로도(縱有連簷三月雨·종유련첨삼월우)/ 손끝에 남은 향기 어이 차마 씻을 수 있으랴.(指頭何忍洗餘香·지두하인세여향)
위 시는 고려시대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소악부(小樂府)’ 중 하나로, 그의 문집인 ‘익재난고(益齋亂藁)’ 권4에 들어있다. 그는 고려 가요를 짧은 절구 형식으로 번역하여 ‘소악부’ 여러 편을 만들었다.
빨래하던 수양버들 늘어진 시냇가에서 임과 손잡고 서로 사랑을 언약했다, 그 사랑은 잊히지 않는다. 맞잡은 손에 서리고 마음에 맺힌 정은 가시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손끝에 남은 임의 향기는 평생 남아 있을 것 같다. 임이 나를 잊더라도, 나는 그 사랑의 맹세를 잊을 수 없다. 아마 임도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여러 사정으로 쉽게 찾아오지 못할 뿐이리라.
만나 말이라도 나누고 사랑의 약조까지 한 경우는 나은 편이다. 만나고도 부끄러워 말 한마디 못 건네고 후회하며 눈물 흘리는 경우도 있다. 조선 중기 명문장가 임제(林悌·1549~1587)의 시 ‘말없이 헤어지고(無言別·무언별)’를 보자, 그의 문집인 ‘임백호집(林白湖集)’ 권1에 있다.“열 다섯 곱디고운 처녀(十五越溪女·십오월계녀)/ 남부끄러워 말없이 헤어졌네.(差人無言別·차인무언별)/ 돌아와 겹문을 닫아걸고선(歸來掩重門·귀래엄중문)/ 배꽃 같은 달을 보고 우네.(泣向梨花月·읍향이화월)”
‘월계(越溪)’는 중국 월(越)나라 미인 서시(西市)가 빨래하던 냇물이고, ‘월계녀(越溪女)’는 월나라에 미인이 많은데서 나온 말이다. 젊은 여성이 정을 품고 있던 남자를 잠시 만난 모양이다. 평소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정작 만나니 말 한마디 건네 보지도 못하고 부끄러워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하니 용기 없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하얀 배꽃 같은 달을 쳐다보니 눈물만 흐른다. 사랑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에겐 영원한 숙제이자 희망 그리고 본능인 것 같다. 위의 시 2수를 그냥 읽어 넘기지 말고 외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