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56> 가요를 시로 옮긴 고려 시대 문신 이제현

손끝에 남은 향기 어이 차마 씻을 수 있으랴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03-26 20:11:57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指頭何忍洗餘香·지두하인세여향

버드나무 늘어진 빨래터 시내 옆에서(浣紗溪上傍垂楊·완사계상방수양)/ 백마 탄 임과 손을 잡고 속삭였네.(執手論心白馬郞·집수론심백마랑)/ 삼월 봄비 그치치 않고 처마에 떨어지는 빗물로도(縱有連簷三月雨·종유련첨삼월우)/ 손끝에 남은 향기 어이 차마 씻을 수 있으랴.(指頭何忍洗餘香·지두하인세여향)

위 시는 고려시대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소악부(小樂府)’ 중 하나로, 그의 문집인 ‘익재난고(益齋亂藁)’ 권4에 들어있다. 그는 고려 가요를 짧은 절구 형식으로 번역하여 ‘소악부’ 여러 편을 만들었다.

빨래하던 수양버들 늘어진 시냇가에서 임과 손잡고 서로 사랑을 언약했다, 그 사랑은 잊히지 않는다. 맞잡은 손에 서리고 마음에 맺힌 정은 가시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손끝에 남은 임의 향기는 평생 남아 있을 것 같다. 임이 나를 잊더라도, 나는 그 사랑의 맹세를 잊을 수 없다. 아마 임도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여러 사정으로 쉽게 찾아오지 못할 뿐이리라.

만나 말이라도 나누고 사랑의 약조까지 한 경우는 나은 편이다. 만나고도 부끄러워 말 한마디 못 건네고 후회하며 눈물 흘리는 경우도 있다. 조선 중기 명문장가 임제(林悌·1549~1587)의 시 ‘말없이 헤어지고(無言別·무언별)’를 보자, 그의 문집인 ‘임백호집(林白湖集)’ 권1에 있다.“열 다섯 곱디고운 처녀(十五越溪女·십오월계녀)/ 남부끄러워 말없이 헤어졌네.(差人無言別·차인무언별)/ 돌아와 겹문을 닫아걸고선(歸來掩重門·귀래엄중문)/ 배꽃 같은 달을 보고 우네.(泣向梨花月·읍향이화월)”

‘월계(越溪)’는 중국 월(越)나라 미인 서시(西市)가 빨래하던 냇물이고, ‘월계녀(越溪女)’는 월나라에 미인이 많은데서 나온 말이다. 젊은 여성이 정을 품고 있던 남자를 잠시 만난 모양이다. 평소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정작 만나니 말 한마디 건네 보지도 못하고 부끄러워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하니 용기 없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하얀 배꽃 같은 달을 쳐다보니 눈물만 흐른다. 사랑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에겐 영원한 숙제이자 희망 그리고 본능인 것 같다. 위의 시 2수를 그냥 읽어 넘기지 말고 외워보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3. 3[시사난장] 풀숲에 버려진 ‘영도다리의 뼈’
  4. 4“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5. 5“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6. 6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7. 7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8. 8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9. 9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10. 10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1. 1“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2. 2“능인, 경영능력에 의문” 부산국힘 내주 지원안 머리 맞댄다
  3. 3국힘 부정선거론 다시 띄우기…민주 “선동에 열중” 비난
  4. 4李 비판 유시민에 김민석 “대응 불필요”
  5. 5[속보] 장동혁 “투표지 육안으로도 많은 문제…특검, 진실 밝혀야”
  6. 6李 대통령 지지율 1%p 하락 39%…민주 국힘 경합
  7. 7靑 “DMZ 지뢰폭발 사건 북한의 사과와 조치 요구”
  8. 8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9. 9국민의힘 곽규택 의원 등 동구 주요 당직자, 북항 돔구장 정부 공모 참여 환영
  10. 10대한항공 말흐리기…실체없는 통합LCC 부산 허브
  1. 1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2. 2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3. 3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4. 4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5. 5부산시, 쿠팡 등 3곳 1630억 투자 유치
  6. 6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7조 역대 최대…반도체로만 106조(종합)
  7. 7롯데, 영도대교 복원 인연 축제로 잇는다
  8. 8AI드론으로 참치 찾는 선박 부산 출항
  9. 9‘덕후 천국’ 부산에 떴다…롯데百 전국 첫 IP 전문관
  10. 10가계대출 금리 5% 턱밑…고정형 주담대 사상 첫 5% 뚫어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3. 3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4. 4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5. 5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6. 6기말고사에 EBS 유사 문항, 처음 아니었다
  7. 7착취 당한 男 장애인 구조해도…부산엔 임시거처조차 없다
  8. 8국회 복지위 ‘침례병원 정상화’ 정부 결단 촉구
  9. 9검증 체계 없는 유가보조금…줄줄 샌다
  10. 10본사 비대위·퇴직자, 지광 고소…실질경영자에 ‘체불 책임’ 추궁
  1. 1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2. 2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3. 3“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4. 4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5. 5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6. 6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7. 7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8. 8밀워키, 창단 58년 만에 WS 우승…5차전서 4-1로 탬파베이 제압
  9. 9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10. 10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