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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63> 봄꽃의 생각을 시로 읊은 19세기 시인 정지윤

전생의 꽃 나라에 인연 아직 못 끊었네(香國前生未了因·향국전생미료인)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04-18 19:11:51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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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좋은 계절 수레바퀴 돌듯 돌아오면(歲歲煙光似轉輪·세세연광사전륜)/ 새로 돋은 떨기에 이전 생각이 되돌아오네.(新叢記得舊精神·신총기득구정신)/ 번뇌의 꽃 뿌리는 어디서 돌아오는 것일까?(漏根何處歸來些·누근하처귀래사)/ 전생의 꽃 나라와 인연 아직 끝내지 못했네.(香國前生未了因·향국전생미료인)/ 한(恨)은 두견새 울음에 몰래 스며들고(暗入杜鵑聲裏恨·암입두견성리한)/ 몸이 커지니 나비 꿈으로 변신하였네.(長成蝴蝶夢中身·장성호접몽중신)/ 황혼녘에 돋은 달은 달빛을 끌어당겨(分明句引黃昏月·분명구인황혼월)/ 인적 없는 정원에서 모습을 그려내게 하네.(庭院人空囑寫眞·정원인공촉사진)

위 시는 조선 후기 하원(夏園) 정지윤(鄭芝潤·1808~1858)의 시 ‘花魂(화혼·꽃의 넋)’으로, 그의 문집인 ‘하원시초(夏園詩鈔)’에 수록돼 있다.

시인은 봄에 피고 지는 꽃의 운명을 읽어내고 있다. 시인이 보기엔 꽃에도 넋이 있다. 게다가 그 넋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위 시는 그 소리를 듣고 읊은 것이다. 봄이 되면 묵은 꽃이 다시 정신을 차린다. 불교에서 말하듯 꽃도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리라. 번뇌의 뿌리에서 꽃을 피워 전생의 인연을 이어간다. 그런 꽃인들 한이 없으랴. 입이 없으니 한을 뱉어낼 수 없다. 그러니 두견새 울음에 몰래 실어 보낸다. 몸이 있어도 마음과는 달리 떨어지고 만다. 호접지몽(蝴蝶之夢)에서나 살아 있다. 이런 꽃의 존재를 누가 어여삐 여길까? 인적 없는 정원 하늘 위로 달이 환히 떴다. 그 달빛 끌어와 자기 모습을 그려달라고 한다.

봄이 되니 많은 꽃이 피었다가 졌다. 필자가 사는 화개골에는 적목련화와 돌복숭아꽃이 아직 좀 남았다. 두 꽃 모두 붉다. 엊그제는 전남 강진의 김영랑 생가에 가서 붉은 모란꽃과 흰 모란꽃을 실컷 보고 왔다.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면서도 격조 있는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한 정지윤이니까 꽃의 영혼을 읽어낸 것 같다. 꽃이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 꽃이 이런 생각을 할진대 우리 인간은 갈수록 생각 없이 본능과 물질만으로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부터 하루하루 성찰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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