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26> 홀로 깨어 있을 수 없는 세상을 산 여항시인 이정주

홀로 깨어 있을 수 없는 세상이어서(世無獨醒者·세무독성자)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11-28 18:57:57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본래 술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지만(性本不愛酒·성본불애주)/ 그래도 술 한 병은 놔두고 사네.(猶貯酒一甁·유저주일병)/ 한가한 이들에 대한 겁이 많아(多恐悠悠者·다공유유자)/ 나 혼자 술 깨어 있다 말할까봐.(將我號獨醒·장아호독성)/ 쓸쓸한 매화나무 아래에서(蕭瑟梅樹下·소슬매수하)/ 소리 내어 이소경을 읽는다네.(朗讀離騷經·낭독이소경)/ 홀로 깨어 있을 수 없는 세상이어서(世無獨醒者·세무독성자)/ 매화에게 들려주는 길밖에 없다네.(要使梅花聽·요사매화청)/ 시를 탐하는 버릇이 두보보다 심하여(耽詩癖於杜·탐시벽어두)/ 평생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네.(百年不憚勞·백년불탄로)/ 산자락 다 한 곳에 다다른 줄 알았는데(謂到山盡處·위도산진처)/ 더 높은 산이 다시 나타나네.(復有一層高·부유일층고)

위 시는 19세기 여항시인 몽관(夢觀) 이정주(李廷柱)의 ‘우연히 지은 시(偶題·우제)’로, 그의 문집인 ‘몽관시고(夢觀詩稿)’에 들어 있다. 그는 당대에 뛰어난 여항시인으로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던 이상적(李尙迪)과 인척관계였다. 시 세계는 대체로 만당풍(晩唐風)으로 기울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소경(離騷經)’은 중국 전국시대 시인 굴원(屈原)이 지은 시이다.

이정주는 시문에 탁월하였지만 중인이라는 신분에 자의식을 많이 느낀 것 같다. 조선 시대에도 시인은 술을 많이 마셨던 모양이다. 하긴 어느 시대라도 시인과 술을 떼어놓지 못하였을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시 ‘막걸리’에서 “…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이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인 것이다”고 하지 않았던가. 젊은 시절 필자와 시작(詩作) 활동을 하던 시인들에게도 술은 밥 이상이었다.

이정주는 술을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지만 집에 늘 술 한 병을 두고 산다. 술을 좋아하는 시인들이 오면 함께 어울려야 한다. 혼자만 깨어 있으면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속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대상은 매화나무밖에 없다. 홀로 깨어 있는 사람은 외롭다. 또한 자신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높은 산이 나타난다. 예나 지금이나 인생이 원래 그런 모양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도청도설] 발가벗겨진 사우디
  3. 3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4. 4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5. 5[시민기자] ‘핑크 가을’ 내려앉은 대저생태공원
  6. 6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7. 7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8. 8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9. 9이번에는 진짜 가야할 때…‘부캉이’ 다시 바다로 보낸다
  10. 10[뭐라노] 금양 부활할까
  1. 1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2. 2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3. 3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4. 4[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北 적반하장 용납 못해…추가 도발 감행시 단호하게 대응”
  5. 5"법령 검토해 결정하겠다"던 김지용 중수청장, 국무회의 참석
  6. 6[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7. 7여도 야도 시중은행 연쇄 해킹 사태 집중 질타
  8. 8이 대통령, "생애 첫 연금 지원사업 신청한 사람만? 실질적 불평등"
  9. 9통일부. 北 대남확성기 재개 위협에 “문제 해결 노력에 호응” 촉구
  10. 10이 대통령 "관행·절차 얽매이지 말고 주택 공급 전격전 펼치길"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뭐라노] 금양 부활할까
  3. 3내년 주목할 세계 여행지 톱10에 부산… 국내 유일
  4. 4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5. 5부산 명물 삼진어묵, 상하이 입맛 잡는다
  6. 6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7. 7"원전 사업자 한수원, '안전 미준수' 과징금만 5년간 338억원"
  8. 8선원노련 김두영 위원장, ITF(국제운수노련) 집행위 선출
  9. 9“사업비 턱없이 부족”… BS한양, 가덕도신공항 컨소시엄 탈퇴 의사 밝혀
  10. 10[한 손 뉴스] 첨단 드론 투입해 야간 산불 진화하는 길 열렸다
  1. 1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2. 2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3. 3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4. 4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5. 5이번에는 진짜 가야할 때…‘부캉이’ 다시 바다로 보낸다
  6. 6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7. 7“미래대응기금 조성, 교부세 축소 안 돼”
  8. 8양산시, 종합장사시설 후보지 오룡마을 선정…2030년 말 준공 목표
  9. 9어린이집 앞 석면지붕 빼곡…소유주들 빈집 등 이유로 방치
  10. 10상습 음주운전 꼼짝마…후 불어야 시동 걸린다
  1. 1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2. 2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3. 3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4. 4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5. 53연승 KIA, LG 꺾고 23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
  6. 6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7. 7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8. 8‘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9. 9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10. 10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