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 기울이며 함께 만난 곳(尊酒相逢地·준주상봉지)/ 가을바람은 끝없이 불어오누나.(秋風欲盡頭·추풍욕진두)/강산은 맑기가 그림 같은데(江山淸似畵·강산청사화)/ 세월은 빠르기가 물결과 같네.(光景疾如流·광경질여류)/ 내 뜻을 무엇으로 말미삼을까?(吾意何由滿·오의하유만)/ 그대 발길 잠시도 머물지 않네.(君行不少留·군행불소류)/ 석양은 부여잡은 옷소매에 비치고(斜陽照執袂·사양조집몌)/ 우리 함께 대화루에 기대어 섰네.(共依大和樓·공의대화루)
위 시는 설곡(雪谷) 정포(鄭誧·1309~1345)의 ‘태화루에서 해봉을 보내며’(太和樓送海峯·태화루송해봉)으로, 그의 문집인 ‘설곡집’(雪谷集) 권 하(下)에 수록돼 있다. 정포가 해봉이라는 사람을 보내기 위해 태화루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읊은 시이다. 정포는 고려 후기 1342년(충혜왕 복위3년) 원나라에 가 왕제(王弟)를 도우려 한다는 모함을 받아 울주(蔚州·현 울산) 군수로 좌천성 유배를 당해 와 있을 때이다.
수련의 내용을 볼 때 계절은 가을이고 때는 석양 무렵이다. 함련은 태화루에서 본 풍경이다. 태화루는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더불어 영남 3대 누각이다. 태화강변 태화루는 빼어난 풍광으로 수많은 시인 묵객이 찾던 곳이다. 4구 “세월은 빠르기 물결과 같네” 표현은 태화루 아래 용검소(龍黔沼)를 흘러가는 빠른 물살에 비유한 것이다. 경련에서는 해봉을 보내기 섭섭한 정포의 마음을 나타낸다. 미련에서는 이별의 섭섭함에 해봉의 옷소매를 붙잡고 놓지 못한다.
해봉 역시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태화루에 서 있다. 석양이 두 사람을 비춘다. 마지막 구 ‘대화루’는 태화루를 일컫는다. 정포는 1343년 여름 울주에서 안동으로 이배되었다가 그해 겨울 유배에서 풀려났다. 그는 1326년(충숙왕 13) 과거에 급제한 문신으로,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그제 저녁에 고교 동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태화루에서 읊은 한시 좋은 것 없을까? 서울에서 친구들이 와 울산 자랑을 하다가 태화루 이야기를 하는데 외우는 한시가 있었으면 읊어 폼 좀 잡았을 텐데. 여하튼 한 수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고민하다 정포의 위 시를 소개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