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하지 않아도 청산은 지게문으로 들어오고(入戶靑山不待邀·입호청산불대요)/ 온 산에 가득한 꽃은 단정하게 인사하네.(滿山花卉整容朝·만산화훼정용조) / 앞 여울 물소리 시끄럽다 싫어하지 말아야지(休嫌前瀨長喧耳·휴혐전뢰장훤이)/ 언제나 시끄러운 세상 소식 들리지 않게 해줄 테니까.(使我無時聽世囂·사아무시청세효)
위 시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집을 지은 후 흥에 겨워’(堂成後漫興·당성후만흥)로, 그의 문집인 ‘고산유고(孤山遺稿)’에 있다.
윤선도는 효종이 대군 시절 공부를 가르친 스승이며, 전남 완도군 보길도(甫吉島)에 들어가 단가(短歌)인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40수를 지은 문사이다. 시는 칠언절구이다. 윤선도가 집을 지었다. 방문(지게문)만 열면 청산이 들어온다. 문밖만 나가면 산이 보인다. 산에 가득한 꽃은 다소곳이 웃으며 인사한다. 그런데 셋째 구인 전구(轉句)에서 상황 변화가 일어난다.
대체로 4행인 절구에서는 첫째·둘째 구에서는 풍광을 읊다가 셋째 구에서 시인 심경을 대입한다. 결구(結句)인 넷째 구에서는 시인의 마음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절구에서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은 넷째 구에 담긴다.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이제 세상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 그런 심경을 표현하는 데 여울 물소리를 매개로 했다. 여울 물소리가 시끄러워 진흙탕 싸움 속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가 안 들린다.
요즘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인간 세상이 조용한 적은 없었다. 조용하면 신선들 세상이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어제오늘도 지인과 모르는 사람까지 수십 통 문자가 왔다. 필자 역시 진세(塵世)를 떠나 지리산에 묻힌 지 만 8년이 다 되어간다. 조용히 혼자 차산(茶山)에 올라가 차 농사를 짓고, 혼자 종종 지리산을 탄다. 그리고 짬을 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어쩔 수 없이 휴대전화를 없애지 못하고 갖고 있다.
정치적 이해 당사자나 어느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은 절박하다 보니 필자 같은 산인(山人)에게까지 문자를 보내리라. 필자의 집 근처에도 개울이 있어 밤마다 물소리를 들으며 잔다. 물론 나라가 망한다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