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蕭蕭孤影暮江潯·소소고영모강심

쓸쓸한 외그림자 저물녘 강가 비치고(蕭蕭孤影暮江潯·소소고영모강심)/ 붉은 여뀌꽃 시들어 양 기슭에 그늘졌네.(紅蓼花殘兩岸陰·홍료화잔양안음)/ 부질없이 서풍을 향해 옛 짝을 불러대며(謾向西風呼舊侶·만향서풍호구려)/ 구름 나무 만 겹이나 깊은 줄 모르네.(不知雲樹萬重深·부지운수만중심)

위 시는 조선 중기 문신인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1486~1562)의 ‘좌의정 상진(尙震)이 기러기를 그린 그림축에 쓰다’(題尙左相畵雁軸·제상좌상화안축)로, 그의 문집 ‘양곡집(陽谷集)’에 있다. 그는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사이다. 상진(尙震·1493~1564)은 1519년 문과에 급제해 우의정을 거쳐 1551년 좌의정, 1558년 영의정에 올랐다. 아마 소세양이 상진이 좌의정 때 그린 그림을 보고 지은 시인 것 같다.

기러기는 북쪽이 고향인 새다. 가을에 우리나라에 와서 봄에 시베리아 사할린 알래스카 등지로 가는 겨울철새이다. 겨울에는 강가도 쓸쓸하다. 물가에서 많이 자라는 일년생 풀인 여뀌꽃은 가을에 볼 수 있는 야생화이다. 겨울이 되니 강기슭에 시들어 있다. 그림에 구름과 나무도 있는 모양이다. 셋째 구와 넷째 구는 소세양의 심경을 읊은 말일 수도 있고, 그 그림을 그린 좌의정 상진의 마음을 대신 드러낸 말일 수도 있다. 나뭇잎도 다 떨어진 겨울 강가를 그린 그림의 쓸쓸하고 황량함을 그렸다.

어제 하동 읍내에 나가 늦은 점심을 먹은 뒤 하동송림에 가 산책했다. 하동송림은 섬진강 가에 있다.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웠으나 맨발로 걷는 분들이 더러 있었다. 전남 광양으로 넘어가는 옛 철로 아래에 빈 재첩잡이 배 몇 척이 물살에 일렁거렸다. 송림에는 색이 바랜 솔잎이 수북하였다. 이쪽이나 강 건너 광양이나 강가 나무는 잎을 다 떨구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위 시 분위기와 비슷했다. 송림이 넓은 데다 소나무 수령이 오래돼 깊은 산중에 든 느낌이 들었다.

찬 강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필자 역시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친구들이 생각났다. 물론 강가에서 친구들 이름을 불러도 그들은 들을 수 없다. 한해 끝자락인 데다 바람 센 강가를 걸으니 외로운 마음이 절로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