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不識梅花處·불식매화처
길고 높은 두 봉우리(長了峻雙峰·장료준쌍봉)/ 멀고도 머네 십리 물가 길(漫漫十里渚·만만십리저)/ 마침 새벽 눈 깊어 응하다(祗應曉雪深·지응효설심)/ 매화 핀 곳 알지 못하겠네.(不識梅花處·불식매화처)
위 시는 조선시대 18세기 전반기에 주로 활동한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1671~1751)의 ‘눈 쌓인 벌판을 나귀 타고 가다’(雪坪騎驢·설평기려)로,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에 적힌 제시(題詩)이다. 수묵채색화로,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제목 ‘설평기려’는 그림에, 시는 왼쪽 별지에 있다. 정선이 1740년(영조 16) 초가을 양천현령(陽川縣令)으로 부임해 그해 겨울 그린 그림이다.
정선은 양천현령을 지낼 때인 1740~1741년 그린 그림을 모아 ‘경외명승첩(京外名勝帖)’을 만들었다. 그 첩에 이 그림이 있다. 정선은 이병연과 시화(詩畫)를 주고받으며 교유했다. 두 사람은 ‘시화환상간(詩畫換相看)’, 즉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 보는 방식으로 많은 작품을 낳았고 영조 집권기 ‘그림 겸재, 시 사천’이라는 구도(?)를 형성하며 조선 후기 문예를 부흥했다. 그림 속 인물은 눈 덮인 양천평(陽川坪) 잔로(殘路)를 따라 나귀를 타고 우장산을 향해 가고 있다. 시와 그림 둘 다 차가운 겨울에 탐매(探梅) 하러 떠나는 고아한 심경을 황량한 설경 속에 대조시킨다. 필자는 셋째 구의 ‘應(응)’자 해석에 고민했다. ‘새벽에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거기 마음이 뺏기다 보니’라는 뜻으로 봤다. 그래야 넷째 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물론 다르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지식인에게 은일(隱逸) 문화가 있었다. 선비가 벼슬길에 나서지 않거나 벼슬을 버리고 산림으로 숨는 현상이다. 당파싸움으로 처형되거나 유배 가던 선비가 많았던 시기다. 이런 풍류는 정치적 돌파구를 찾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고, 무력감에 빠진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어제 박성아 하동문화원 한국학연구소장 등 관계자와 섬진강 건너 다압면 소학정마을 매화를 또 보러 갔다. 그새 조금 더 피어 있었다. 그제 필자가 차산(茶山)에 일하러 올라가니 홍매가 피려고 꽃 몽우리가 조금 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