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淸風吹起東茶興·청풍취기동다흥
새로 법당을 산꼭대기에 세우니(新開法宇鎭崗頭·신개법우진강두)/ 모든 골짜기에 범과 용이 산다네.(虎踞龍盤百谷流·호거용반백곡류)/ 고찰엔 천년 만에 좋은 기운 돌아오고(古寺千年回運吉·고사천년회운길)/ 노승은 발우 하나로 깊은 산속에 은거했네.(殘僧一鉢卜居幽·잔승일발복거유)/ 맑은 바람은 조선 차(東茶)의 흥취를 돋워 주고(淸風吹起東茶興·청풍취기동다흥)/ 아름다운 새는 지저귀며 시름을 달래주네.(好鳥噪分謾語愁·호조조분만어수)/ 나라 기운 북돋우려 힘 다해 세운 절에서(竭力成功裨補地·갈력성공비보지)/ 세월만 허송하며 한가롭게 노닌다네.(虛消水火等閒遊·허소수화등한유)
위 시는 범해(梵海) 각안(覺岸·1820~1896) 스님의 ‘쾌년각에 쓰다’(題快年閣)로, 그의 문집인 ‘범해선사시집’ 권 2에 들어있다.
초의 의순(草衣意恂·1786~1866)이 쾌년각이라는 법당을 새로 건립한 것을 그의 제자인 각안이 축원한 내용이다. 초의는 1837년 일지암에서 우리나라 차의 품질이 우수함을 칭송한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해 정조의 부마인 홍현주에게 바쳤다. 경련의 첫 구 “맑은 바람은 조선 차의 흥취를 돋워 주고(淸風吹起東茶興·청풍취기동다흥)”는 초의의 ‘동다송’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초의는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 차를 중흥시킨 다성(茶聖)으로 평가받는다.
초의선사는 39세에 해남 두륜산 자락에 대둔사(大芚寺·현 대흥사) 말사인 일지암을 지어 기거했다. 그리고 인근에 새로 주석할 법당을 지었는데, 그곳이 바로 쾌년각이다. 전남 완도 출신인 각안은 14세인 1833년 두륜산 대둔사에서 출가하였다. 1835년 호의 시오(縞衣始悟)를 은사로 삼고, 초의선사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각안은 고승전인 ‘동사열전(東師列傳)’을 비롯해 많은 저술을 남긴 학승(學僧)이자 시승(詩僧)이었다.
필자는 엊그제 오후에 올해 첫 찻잎을 따 햇차 맛을 보았다. 양은 적었지만 은은하고 향기로운 차향을 느낄 수 있었다. 찻잎을 딴 그날 오전에 지인들이 목압서사를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다 초의선사가 머물며 ‘다신전(茶神傳)’을 등초했던 칠불사(七佛寺)에 안내했다. 그러면서 이곳 화개골에서도 강설한 각안 스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