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莫敎容易犯風埃·막교용이범풍애
서로 붙들고 흥에 겨워 산에 들어오니(提携乘興入山來·제휴승흥입산래)/ 신록이 우거지고 폭포 소리는 우레로다.(嫩綠成陰瀑響雷·눈록성음폭향뢰)/ 깊은 골짝에서 잠시 번잡한 마음 씻노니(暫滌煩襟資絶壑·잠척번금자절학)/ 세상 풍진 쉽게 휩쓸리지 않도록 하리라.(莫敎容易犯風埃·막교용이범풍애)
위 시는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1627~1704)이 ‘기사년 늦은 봄, 벗들과 삼성(三成)이란 작은 암자에서 노닐며’(己巳暮春 從諸友遊三成小刹)로, 그의 문집인 ‘갈암집(葛庵集)’ 권 1에 들어있다.
이황의 학통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거두로 평가되는 이현일의 아버지는 이시명(李時明), 어머니는 음식 조리서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을 저술한 장계향이다.
이현일은 우참찬·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갑술환국 이후 함경도 홍원과 종성, 전라도 광양 등지로 유배되었다 1699년 유배에서 풀려나 안동으로 귀향한 후 강학에 전념한 학자였다.
기사년은 1689년이다. 이 해에 이현일은 사업(司業)에 임명되고 이어 사헌부장령·공조참의에 임명됐다. 당시 인현왕후가 폐비된 것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고 사직소를 올렸으나 허락되지 않아 분황(焚黃)을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마 위 시는 이 무렵 고향 안동으로 돌아와 벗들과 어울리며 읊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이현일은 벗들과 서로 붙잡고 도와주며 봄 산에 올랐다. 산은 새잎이 돋아 신록이 우거지고 폭포 소리는 우레 같다. 거기서 벼슬살이에서 쌓인 마음의 때를 씻었다. 그러면서 더는 세상 먼지를 덮어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장인인 장흥효(張興孝)와 아버지인 이시명 등 가족 모두가 퇴계 이황의 학맥을 잇는 대학자들이었다. 숙종 시기였던 당시 서인과 남인의 당파적 싸움이 치열했다. 그러므로 그가 그러한 풍진에 휩쓸리지 않으려 다짐한 일은 당연했을 것이다.
필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낫 한 자루 들고 차산(茶山)에 올라가 새 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일을 한다. 풍진 세상이야 예나 지금이나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세상이 어떠하든 산에는 하루가 다르게 새싹이 돋아나고 있음을 본다. 사방을 둘러보면 겨우내 벌거벗었던 지리산 전체가 연한 녹색으로 뒤덮여 있다. 마음이 너무나 편하고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