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리 길 사람 소리 들리지 않고(百里無人響·백리무인향)/ 산속 깊은 곳 뭇새만 우네.(山深但鳥啼·산심단조제)/ 스님 만나 가는 길 묻고(逢僧問前路·봉승문전로)/ 스님 가니 길 다시 헷갈리네.(僧過路還迷·승과로환미)/ 나귀 타고 가며 나그네 졸고(騎驢客子睡·기려객자수)/ 맑은 대낮 소쩍새 울어대네.(淸晝杜鵑啼·청주두견제)/ 지는 버들 솜털 풀잎 위 깔리니(落絮連芳草·낙서연방초)/ 산 멀고 가는 길 더 헷갈리네.(山長路轉迷·산장로전미)
위 시는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1603~1681)의 ‘금강산 가는 도중에’(金剛道中·금강도중)로, 그의 문집인 ‘설봉유고(雪峯遺稿)’ 권 4의 관동록(關東錄)에 수록돼 있다.
강백년은 1627년(인조 5) 문과에 급제하여 1680년(숙종 6)까지 55년 동안 내외직을 두루 역임한 문사였다. 예조판서·판중추부사 등을 지낸 후 1673년(현종 14) 참찬이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그의 아들 강현과 손자 강세황도 기로소에 들어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로 불렸다. 그는 1690년(숙종 16)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1695년(숙종 21)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
위 시를 보면 봄날에 강백년이 금강산에 간다. 백 리를 가는 동안 사람 한 명 없다. 적막한 시골길을 가면서 뭇새 소리만 듣는다. 길에서 만난 스님에게 가는 길을 묻는다.
하지만 그 스님 가고 나니 길은 다시 헷갈린다. 따스한 봄날씨 덕분인지, 시인은 나귀 등에서 깜빡깜빡 존다. 그 와중에 소쩍새 울음소리도 듣는다. 버드나무 솜털이 떨어져 길을 뒤덮는다. 그러지 않아도 헷갈리는 길이 더욱 헷갈린다.
요즘 차산(茶山)에서 매일 찻잎을 딴다. 찻잎이 많이 올라오지 않아 따는 양은 적다. 찻잎을 따며 소쩍새가 소쩍소쩍 우는 소리를 듣는다. 소쩍새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이다. 그 귀한 소쩍새가 찻잎을 따는 내내 가까이서 운다. 이 새는 낮에는 잠을 자고 주로 밤에 활동한다.
그런데 필자를 위해 대낮에 울어주니 고맙기만 하다. 위 시에서도 소쩍새가 낮에 울었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에 따르면 소쩍새는 두견새와는 좀 다르다. 조류 생태적으로는 다른 새이지만, 문학적으로는 같은 새로 표현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