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樽美酒千人血·금준미주천인혈
“금 술잔의 달콤한 술은 백성들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금준미주천인혈)/ 옥그릇의 풍성한 안주는 백성들의 살점이다.(玉盤佳肴萬姓膏·옥반가효만성고)/ 떨어지는 촛농은 백성의 눈물이며(燭淚落時民淚落·촉루락시민루락)/ 노랫가락 커질수록 원성 소리 드높아진다.(歌聲高處怨聲高·가성고처원성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위 시는 소설 ‘춘향전’(春香傳)에 나온다.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 요구를 거부하자 그녀를 옥에 가두고 변학도는 생일잔치를 벌인다. 이때 과거에 장원급제한 이몽룡이 거지 행색으로 들어와 변학도 앞에서 읊은 시이다. 호사스러운 술과 안주가 백성의 피와 살을 착취한 것임을 풍자하고 있다.
남원 광한루(廣寒樓) 옆에 전라도 관찰사와 남원 부사 송덕비를 한데 모아 놓은 곳이 있다. 거기서 춘향이 그네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별도 비석을 하나 볼 수 있다. 1591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1607~1611년 남원 부사를 지낸 성안의(成安義·1561~1629)의 송덕비이다.
성안의가 남원 부사 재직 당시 성이성(成以性·1595~1664)이란 10대의 아들이 따라와 함께 지냈다. 당시 성이성의 글 스승은 임진왜란 때 남원 의병장이었던 조경남(趙慶男·1570~1641)으로, 야사인 ‘난중잡록(亂中雜錄)’을 펴낸 인물이다. 이 책에 조경남이 중국인에게서 들은 위 시가 소개돼 있다. 성이성은 조경남에게서 위 시를 배웠다. 성안의가 승진해 남원을 떠날 때 성이성은 17살이었다. 성이성은 33세인 1627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한 후 4차례 암행어사를 지냈다.
실제로 성이성은 호남지방 암행어사 출두 때 위 시의 1·2행 몇 자만 고쳐 다음과 같이 읊었다. “술동이 안의 맛 있는 술은 천 사람의 피요(樽中美酒千人血·준중미주천인혈)/ 소반 위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盤上嘉肴萬姓膏·반상가효만성고)/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성이성의 4대손 성섭(成涉·1718~1788)이 쓴 ‘교와문고(橋窩文藁)’에 이 시가 실려 있다.
소설 ‘춘향전’이 실존 인물인 성이성을 모델로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며칠 전에도 필자는 부산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광한루를 산책하면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