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遙知萬壑爭流處·요지만학쟁류처
천 년 전 고운의 큰 붓이 자취를 남긴 곳(千載孤雲大筆題·천재고운대필제)/ 가을바람 부니 지팡이 짚고 돌아갈 마음 일어나는구나.(秋風歸興一枯藜·추풍귀흥일고려)/ 멀리서도 알겠구나, 일만 골짜기 물 다투어 흐르는 곳(遙知萬壑爭流處·요지만학쟁류처)/ 쌍계를 건너고도 또 몇 시내를 건너야 하리.(渡盡雙溪又幾溪·도진쌍계우기계)
위 시는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1564~1635)의 ‘지리산 승려 의준(義俊)의 시축에 있는 운을 따라 차운하여, 산으로 돌아가는 그를 전송하다 ― 두 수’(次智異山僧義俊軸韻送還山 二首·차 지리산승 의준 축운 송환산 이수) 중 첫수로, ‘월사집(月沙集)’ 권 18 ‘권응록 하(倦應錄下)’에 들어 있다.
1615년(광해군 7) 가을 무렵에 지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정귀는 조선시대 예조판서와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첫 구의 ‘大筆(대필)’은 ‘큰 붓’, 곧 뛰어난 필적이라는 뜻이다. 쌍계사 아래에 두 개의 큰 바위에 적힌 ‘雙溪(쌍계)’와 ‘石文(석문)’ 글자를 말한다. 고운 최치원이 큰 철장(鐵杖)으로 썼다는 전설이 있으며, 쌍계사로 들어가는 문 역할을 했다.
위 시는 이정귀 자신을 찾아왔다가 지리산으로 돌아가는 의준 스님을 보내는 장면이다. 둘째 구의 ‘歸興(귀흥)’ 역시 이정귀 자신의 귀흥이 아니라 ‘산으로 돌아가는 의준 스님의 귀흥’이다.
위 시에서 특히 마지막 두 구가 좋다. ‘萬壑爭流(만학쟁류)’라는 큰 지리산의 풍경에서 출발하여, 마지막에는 ‘又幾溪(우기계)’, 즉 ‘또 몇 개울인가’라는 물음으로 끝낸다. 단순히 개울 숫자를 묻는 것이 아니라, 첩첩한 지리산 깊숙이 들어가는 길의 아득함과 그 산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담은 표현이다.
목압서사는 쌍계사 바로 인근에 있어 필자는 하루 한 번 이상은 쌍계석문 일대를 지난다. 위쪽에서 내려오는 계곡과 불일폭포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쌍계사 앞에서 만난다. ‘쌍계(雙溪)’는 두 계곡이 만난다는 뜻이다. 지금은 길이 새로 놓여 포장되고 다리가 생겨 옛 지형이 많이 변형되었다. 어제 처서도 지나고 이 일대에는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과연 이정귀가 부러워할 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