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好待明年來有期·호대명년래유기
신이 나르고 귀신이 부려 층층 누대를 쌓았는가,(神輸鬼役築層臺·신수귀역축층대 / 하룻밤 사이 이루어 나 오기를 기다렸구나.(一夜能成待我來·일야능성대아래) / 눈길은 응당 하늘 깊은 곳까지 바라볼 만하고(眼力只應天隩覷·안력지응천오처) / 잠시 흰 구름 더미를 헤치며 길을 열었구나.(暫時斸破白雲堆·잠시촉파백운퇴)
서산 해 어스름한데 더디 가지 않아 안타깝고(西日晻晻苦不遲·서일암암고불지) / 술자리 파할 무렵 다리 가에서 서성거리네.(躊躇橋畔酒闌時·주저교반주란시) / 구름 낀 산아, 내가 간곡히 하는 말을 들어라(雲山聽我丁寧說·운산청아정녕설) / 내년에 다시 올 기약 있으니 잘 기다려 다오.(好待明年來有期·호대명년래유기)
위 시는 온계(溫溪) 이해(李瀣·1496~1550)의 ‘아우 경호의 <촉랭대> 시에 차운하다’(차사제경호촉랭대운·次舍弟景浩矗泠臺韻) 2수로, ‘온계일고(溫溪逸稿)’ 권 1에 실려 있다. ‘경호(景浩)’는 이황의 자(字)이다. 이해는 조선 전기에 대사헌·대사간·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이황이 죽령의 촉랭대(矗泠臺)와 소혼교(消魂橋)에서 형 이해를 보내며 먼저 두 수를 지었고, 이해가 그 운을 받아 위의 두 수로 화답했다.
6형제 중 이황은 막내였고, 이해는 넷째였다. 두 형제는 6년 시차로 대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갔다. 이황이 풍기군수로 있을 때 충청감사인 이해가 잠시 고향에 와 죽령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지내다 작별했다. 이해는 “내년에 꼭 다시 올 테니 촉랭대 위에서 또 한 잔 하세”라고 약속했다.
이해는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권신 이기(李芑)를 탄핵하였다. 이에 이기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그 후 이기의 심복인 사간 이무강(李無彊)의 탄핵을 받아 문초를 받고 갑산으로 귀양가다 양주에서 병사하였다. 형제는 같은 조정에서 벼슬하며 동료로, 시의 창수자로, 학문의 토론자로 지냈다.
필자는 최근 이들 형제의 후손으로, 20여 권의 저서를 펴낸 이동식(73) 전 KBS 문화대기자로부터 그의 저서인 ‘조선 천재 형제의 엇갈린 운명’을 받아 읽고 있다. 언론계의 한참 선배인 그분과 종종 연락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가 쓴 ‘온계이해평전’도 읽어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