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는 밤에 그물을 들고 나서고(漁子夜提網·어자야제망) / 풀꽃 우거진 모래톱 서쪽에 배를 매어 둔다.(繫舸芳洲西·계가방주서) / 갈대를 태우는 곳에 가을벌레 울고(燒葦秋蚓鳴·소위추인명) / 시를 읊조리는데 굶주린 솔개가 운다.(吟詩飢鳶啼·음시기연제) / 구름 너머 온 숲은 붉게 물들었고(雲外千林紅·운외천림홍) / 바람 앞에 떨어지는 이슬은 차갑다.(風前零露凄·풍전영로처) / 동야에게 아름다운 시구가 있으니(東野有佳句·동야유가구) /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不覺頭角低·불각두각저)
위 시는 조선 전기 문인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2)의 ‘강가의 임시 숙소에서 묵으며, 나는 ‘낙월저금분(落月低金盆)’이라는 시구를 얻고 숙도(叔度)는 ‘호수종야명(湖水終夜明)’이라는 시구를 얻어, 운자를 나누어 각각 시를 짓다.’(宿江浦蘧廬 得落月低金盆 叔度得湖水終夜明 分韻各賦·숙강포거려 득낙월저금분 숙도득호수종야명 분운각부) 5수 가운데 세 번째로, ‘추강집(秋江集)’ 권 2에 실려있다. 숙도는 함께 시를 지은 인물의 자나 호로 보인다.
남효온은 가을날 강가의 숙소에 머물면서 풍경을 시에 담았다. 밤중에 어부가 그물을 들고 나서고, 작은 배는 모래톱 서쪽에 매여 있다. 그 주변에서는 갈대를 태우고 가을벌레들이 운다. 시인이 시를 읊조리는 사이 어디선가 굶주린 솔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미련의 ‘동야(東野)’는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자다. 위 시는 강변 풍경의 묘사를 넘어, 옛 시인의 문학적 성취까지 생각하고 있다.
남효온은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그는 1478년(성종 9)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昭陵)을 복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권력자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이후 산천을 유람하며 시문을 짓는 삶을 살았다.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육신전(六臣傳)’을 남겼으며,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했다.
어제 오후에 하동 읍내 하동송림으로 산책하러 갔다가 섬진강 위를 건너 광양으로 가는 옛 철교를 걸었다. 하동포구 쪽에서 재첩을 잡는 배가 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강 위 다리에서 그 풍경을 오랫동안 바라보니 남효온의 위 시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