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달은 둥글기가 거울과 같고(秋月圓如鏡·추월원여경)/ 아름다운 밤은 아직도 깊어 끝나지 않았네.(良宵殊未央·양소수미앙)/ 작은 연못에는 유독 이슬이 내려앉고(小池偏得露·소지편득로)/ 텅 빈 누각에는 저절로 서늘한 기운이 이네.(虛閣自生涼·허각자생량)/ 애절한 벌레 소리는 가까이 들리고(切切蟲聲近·절절충성근)/ 나무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졌네.(依依樹影長·의의수영장)/ 좋은 새 시구를 짓지 못함이 부끄러우니(愧無新句好·괴무신구호)/ 무엇으로 이 맑은 달빛에 화답할까.(何以答淸光·하이답청광).
위 시는 조선 후기 문신인 수곡(睡谷) 이여(李畬·1645~1718)의 ‘중추야(中秋夜)’ 두 수 가운데 두 번째 작품으로, 그의 문집인 ‘수곡집(睡谷集)’ 권 1에 수록돼 있다.
시인은 가을밤의 보름달을 둥근 거울에 비유하고 있다. 하늘에는 밝은 달이 떠 있고 땅에는 이슬이 내려앉는다. 텅 빈 누각에는 서늘한 바람이 일고, 가까운 곳에서는 가을벌레가 운다. 달빛에 비친 나무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 가을 보름밤 정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마지막 두 구절에서 시인은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밤 풍경을 마주하고도 새로운 시구를 제대로 짓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면서 무엇으로 맑은 달빛에 화답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시인으로서 느끼는 감동과 겸손함이 함께 드러난다.
이여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택당 이식(李植)의 손자이다. 1680년(숙종 6) 문과에 급제한 후 대사성 대사간 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거쳐 좌의정과 영의정에 올랐다. 그는 당파 간 극심한 대립을 경계했으며, 높은 벼슬에 올라도 검소하게 생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만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여주에 은거했다.
가을이 깊어지면 보름달이 더욱 밝게 느껴진다. 지리산 목압마을에도 밤이 깊어지면 계곡물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진다. 그 위로 둥근 달이 떠오르면 온 산이 은은한 달빛에 젖는다. 엊그제가 보름이었지만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려 보름달을 보지 못하고 다음 날인 그제 환한 둥근 거울 같은 달을 보았다. 깊어 가는 가을밤에 둥근달을 보며 시상을 떠올렸으나 이여와 마찬가지로 좋은 시구를 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