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

- 아마추어 동호회서 5억8000만 원으로 대회 운영
- IMF 후 회원 1인당 100만 원씩 모아 1999년 첫 개최
- 최정상급 선수 출전하는 '메이저' 격상이 최종 목표

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 챌린저 대회인 부산오픈은 테니스인에게 보물 같은 존재다. 세계랭킹 100위 안팎인 선수들의 정상급 기량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이고, 선수들에게는 랭킹포인트를 쌓아 '큰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다.

이번 대회 단식에서 우승한 정현(19·삼성증권 후원)은 포인트 110점을 쌓아 세계랭킹을 88위에서 69위까지 끌어올렸다. 복식에서도 남지성-송민규 조가 준우승을 차지하며 65점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대회 총상금을 7만5000달러에서 10만 달러로 늘리고 참가 선수들에게 호텔 숙박을 제공하는 등 규모를 크게 확대함으로써 랭킹포인트가 더 많아졌다.

이런 대회의 주최자가 아마추어 동호회인 '테니스를 사랑하는 모임'(테사모)이라는 점이 놀랍다. 올해 대회에는 경기장·숙소 준비 등 운영비를 모두 합쳐 5억8000만 원의 예산이 들었는데, 부산시 지원금 3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예산 마련부터 대회 운영까지 모두 테사모가 책임졌다. 이를 위해 회원들은 1년 내내 발품을 팔아 기업 협찬 구하기와 티켓 판매 등에 나섰고 ATP와 관계된 업무를 전부 해냈다.

테사모가 부산오픈을 개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자영업을 하는 손병창(61) 테사모 회장은 "우리 동호회가 IMF 사태 직후인 1998년에 결성됐는데 당시 테니스 실업팀이 잇따라 해단하고 대회도 없어지고 있었다"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국내 처음으로 경기력 향상 지원금(상금)을 주는 대회를 해보자는 생각에 당시 회원 13명이 100만 원씩을 내서 1999년부터 부산오픈을 개최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회였던 부산오픈은 ATP의 승인을 받아 2003년부터 챌린저 대회로 개편됐다. 챌린저 대회는 최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하는 '투어'와 유망주들의 무대인 '퓨처스' 대회 사이에 있는 등급이다. 손 회장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의 테니스 종목 리허설을 우리가 맡아서 했는데, 그때 ATP나 ITF(국제테니스연맹) 사람들에게 좋은 인식을 심어 줘서 챌린저 대회를 개최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길로 회원들은 아시안게임 심판으로 활동하면서 모은 돈으로 챌린저 대회 개최 준비에 돌입했다. 워낙 이미지가 좋았던 덕에 ATP의 승인도 어렵지 않게 받았다.

손 회장은 "이제 단골 참가 선수들은 대회 로고송을 흥얼거리면서 다닐 정도"라며 "올해 결승전에 관중 3400명 정도가 왔는데 국내 대회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많은 분이 찾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테사모는 이제 투어 대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유치금에 80억 원, 운영비로 20억 원 정도가 필요한 큰 대회다. 손 회장은 "투어 대회를 개최하는 세계 도시는 60여 곳밖에 되지 않는다. 부산에서 투어 대회를 열게 되면 도시 가치도 올라갈 것"이라며 "지금까지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산시가 투어 대회 개최 지원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메인 스폰서를 맡겠다는 의향을 나타낸 기업도 있어 2018년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테사모의 최종 목표는 투어 대회를 넘어 메이저 대회 개최다. 메이저 대회에서 최고 상금을 자랑하는 윔블던 역시 한 사설 클럽 대회에서 시작됐다. 손 회장은 "남들이 볼 때는 허무맹랑한 꿈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차근차근 이뤄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한다면 못 이룰 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