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공모전 출품만으로
- 친일 작가 낙인은 단편적
- 미술은 시대감성 담은 자료
- 개인에 내재된 갈등·모순
- 해석할 수 있다면 좋은 전시
재일조선인 2세로 인권활동가이자 미술 에세이집 작가로 잘 알려진 서경식(67) 도쿄게이자이대학(東京經濟大學) 현대법학부 교수가 부산을 찾았다. 지난 20일 오후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전과 연계한 특별강좌의 강사로 초청돼 ‘근대 일본 서양화계의 이단아들-아이 미쓰와 마쓰모토 슌스케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한 강연을 2시간 동안 진행했다. 그에게 한국의 근대가 성립된 일제강점기에 조선 화가들이 선보인 작품을 보는 관점과 일본 정세에 관한 전망을 들었다.
 |
| 지난 20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만난 서경식 교수는 “미술은 한일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서 교수와 부산의 인연은 오래전 시작됐다. 한일국교정상화 이듬해인 1966년 재일교포 모국 하계학교에 고등학교 1학년으로 참가했던 서 교수는 부산을 통해 한국에 처음 발을 디뎠다. 당시 부산진역 근처에 살던 친척도 만났다. 군사정권이 시작된 뒤로는 오랫동안 오지 못하다 민주화 이후 그는 부산대·경성대·고은사진미술관 강연 등 일로 종종 부산에 들렀다.
그에게 일제강점기 우리 화가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시립미술관 20주년 기념전에 나온 작가 중에는 연구에 따라 친일 화가로 분류되거나 적어도 소극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고 평가받는 작가가 있다. 이들을 배척하거나 수용하는 양단간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서 교수는 “아직 전시를 보지 못했다”며 ‘일반론’임을 전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서 교수는 “조선미술전람회(조선총독부가 개최한 미술작품 공모전)에 출품한 것 자체가 친일이라는 의견이 있다. 선전에서 뽑힌 것 자체가 친일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이렇게 너무 단편화해도 되나 하는 의문이 있다. 미술은, 예술은 로고스적인(이성적인) 인식을 벗어나 인간의 감성을 표현한다. 로고스적으로 생각하면 친일이라 하더라도 감성으로 보면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된) 김기창의 작품은 겉으로 보면 화려하고 솜씨가 좋은데 어딘가 우울하다.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는 모두 이등 국민이었다. 조선 엘리트가 되더라도 전체 일본으로 보면 불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감정이 작품에 나타난다. 미술은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감성으로 지냈는지 지금 우리가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다. 나쁜 사람이다 혹은 좋은 사람이다, 이항대립적인 관점이 아니라 한 개인 속에 숨어 있는 갈등과 모순을 이 시대 시점에서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은 전시”라고 했다.
일본 아베 총리가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지지율이 폭락하고 정권 교체 전망도 나온다. 일본 정권이 바뀌면 아베 시절 계속된 재일조선인과 한국인에 대한 배척과 혐오 분위기가 반전될지 관심이 모인다. 서 교수는 “일본은 민주주의 생산자, 건설자였던 적이 없다. 패전하면서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가 주어졌고, 대량소비하다 다 써버리고 지금 상황에 와 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의 젊은 층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좋다’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갖고 있다. 나는 일본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응원하지만, 전망은 비관적이다. 아베는 폭력으로 집권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의 필요로 세워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술이 한일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흔한 ‘상호이해’ ‘문화를 통한 우호’ 차원이 아니라 미술에 나타나는 “표면에 안 보이는 인간의 심리를 알아야 서로를 진정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경식 교수는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인권과 소수민족을 주제로 한 강연 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인권활동가이자 ‘나의 서양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기행’ ‘나의 조선미술 순례’ 등 유명 미술 에세이집 저자이기도 하다. 지난 1월에는 예술·인문기행서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을 펴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