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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도장업 혁신 이끌어…지금도 사인대신 도장 찍어요”

‘백년가게’ 이화인재상사 이성환 대표

  •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  |   입력 : 2020-02-13 20:09:44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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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장·인쇄 분야 43년간 매진
- 묵묵히 한 길 걸어가는 뚝심
- 지역 최초로 도장기계 도입
- 도장 서체 샘플 제작 하기도

요즘 도장 하나에 얼마 정도 할까. 목도장 하나에 5000원 선이다. 그런데 20여 년 전에도 도장의 가격은 5000원이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턱없이 낮은 가격이다. 도장은 자신을 대변하는 또 다른 신분증이다. 가치는 그대로인데 IT가 발달하고 공인인증서와 전자결제 등이 자리를 메우며 도장을 찾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사라져 가는 업종을 43년 지킨 부산의 도장 업체가 있다. 3000여 종의 인쇄·인장 재료 등 부자재를 취급하며 부산 도장 분야의 혁신을 이뤄낸 이화인재상사(부산진구 부전2동)다. 13일 만난 이성환(74) 대표에게 오랜 기간 업종을 지켜낸 뚝심의 비결을 물었다.

13일 이화인재상사 이성환 대표가 도장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이화인재상사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추가 선정한 ‘백년가게’ 중 한 곳이다. 백년가게는 업력 30년 이상인 가게(소기업·소상공인) 중 경영자의 혁신 의지, 제품·서비스의 차별화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한다. 평가 항목의 특성상 선정된 업체는 주로 음식점이 많다. 도장·인쇄재료를 다루는 업체는 흔하지 않다. 이 대표는 “백년가게에 선정됐다고 들었을 때 얼떨떨한 기분이 가장 컸다. 다른 사람처럼 특별한 비결이나 재주가 없기 때문”이라며 겸연쩍어했다. 이 대표의 뒤로 벽장 가득히 차곡차곡 정리된 도장·인쇄재료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오랜 단골 사이에서 이 대표의 깔끔한 성격과 일 처리는 유명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30여 년 전 부산에서는 업계 처음으로 도장 기계를 도입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도장은 직접 손으로 조각해서 만들었다. 효율성과 정확도를 따져본 뒤 일본에 있는 도장 기계를 직접 수소문해 들여왔다. 그 이후 다른 업체도 잇달아 도장 기계를 들여오며 도장 산업은 더 확장됐다. 이 대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도장 서체 샘플을 만들어 보급하는 등 지역 도장 분야의 혁신을 주도했다. 모두가 ‘필요성’을 느낀 이 대표의 직감이자 안목 덕분이었다.

시대적 흐름을 발 빠르게 읽은 그였지만 그간의 세월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기술이 발달하며 도장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이 대표를 지켜준 것은 걸어온 길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나 경제가 휘청거릴 때마다 동종 업체가 줄어드는 것을 눈으로 봐왔다”면서 “나 역시 계속 이곳을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지만 이제껏 해온 길을 하루아침에 바꿀 순 없었다. 그래서 묵묵히 일한 것뿐이다. 돈벌이만 생각했다면 진작 다른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줄어든 매출도 큰 타격이다. 월매출은 10년 새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매출이 줄어들며 직원 수도 함께 줄어들었다. 이 대표는 “직원 수가 많을 때는 12명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나까지 모두 4명뿐”이라고 전했다.

도장 재료를 다루기 때문에 이 대표의 도장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은행에서 업무를 볼 때는 수많은 서류에 일일이 사인하는 대신 자동 도장을 가져간다. 툭툭 누르면 자동으로 인주가 찍혀져 나오는 도장을 보고 은행 직원들도 신기해한다고 한다. 투표할 때도 마찬가지다. 투표소에서 본인을 확인하는 칸에는 서명이나 지장 대신 도장을 ‘꾹’ 찍는다. 지금은 투표소에서 본인 확인 과정이 간소화돼 사인 또는 지장으로 대체하는 추세다. 이 대표는 “자기 자신을 대변하는 도장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없다. 그 소중함을 다시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특별한 당부를 건넸다. “투표는 자신의 권리를 한 표로 행사한다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본인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사인보다 도장을 찍는다면 조금 더 신중히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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