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 무관한 기술자 출신
- 사비들이고 발품팔아
- ‘울산 옛말’ 7년만에 출판
- 혼자 녹음하다 오해 받기도
- “사투리 무형문화재 지정하길”
올해 한국 나이로 팔순을 맞은 울산의 한 토박이 원로가 두 번이나 지역사투리 모음집을 발간하고, 급기야 최근에는 사투리보존회까지 창립했다. 국어나 국문학을 전공한 교사나 교수 출신 퇴직자가 그동안 꿈 꿔왔던 일을 행하는 것이거니 했다. 하지만 전혀 무관하게 산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자(산업용 에어컨 제작)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즉각 인터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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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하 울산사투리보존회 회장이 사투리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
걸어 온 길과 판이하게 다른 다소 이색적인 길을, 그것도 적지 않은 나이에 ‘사투리’라는 독특한 분야에 열정을 바치는 이유가 궁금했다.
1941년생 울산 북구 호계 출신 조용하 씨. 지난 15일 울산 남구 그의 자택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나이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기사에도 ‘옹(翁)’이란 접미사 보다 일반적 호칭인 ‘씨’를 쓰기로 했다.
그는 지난 15일자로 ‘울산사투리보존회’를 창립해 회장을 맡았다. 창립회원은 20명 정도다. 대부분 평소 울산 사투리 보존에 대한 그의 열망을 지켜보고 성원해 왔던 친구 등 지인이다. 창립에 앞서 그는 지난해 5월 ‘울산 옛말’이란 제목으로 울산사투리 모음집을 발간했는데 반응이 괜찮아 2쇄까지 찍었다. 또 2013년에는 그의 첫 울산사투리책 ‘니가 구쿠이까내 내가 그쿠지’를 발간한 바 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그렇게 말하지’란 뜻이다.
사투리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 계기를 물었다. “울산 토박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사투리를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울산이 빠르게 산업화 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몰려들고 하다 보니 어느새 점차 사투리가 생활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을 깨닫자 안타까운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퇴직하고는 ‘더 이상 없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 보존해 후대에 전해야겠다’고 결심해 시작했고, 이젠 협회까지 창립하게 됐습니다.”
그의 두 번째 사투리집 ‘울산 옛말’을 살펴봤다. 보기 전엔 그냥 울산사투리를 많아야 1000여 단어 정도 모은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열어 본 순간 ‘와아~’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책은 총 670쪽 분량에 사투리 편, 표준어 편, 외국어 편 등 3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사투리 편은 울산사투리 3만2432단어에 대한 해석을, 표준어 편은 표준어 1만7350 단어를 울산사투리로 번역해 실었다. 마치 ‘한-영’, ‘영-한 사전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 같다. 그리고 외국어 편은 울산에서 주로 써왔던 외래어 418단어를 우리말로 해석했다. 일반적인 사투리 관련 책이 연구서나 학술서 형태가 많은 것과 달리 실용서라 할까. 모두 ‘가나다라’ 순의 국어사전 형태여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책을 완성하기까지 7년여 세월이 걸렸다. 오로지 자비로 연구하고, 울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투리를 모았고, 집필과 출판에 매달렸다. 그런 과정에서 에피소드도 많았다. “사투리를 모으기 위해선 들은 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녹음을 하는데 이를 보곤 ‘당신 뭐 하는 사람이냐’라며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는 이 책에 수록되지 않은, 자신도 모르는 더 많은 울산사투리를 찾아내 기록을 더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혼자 더 이상 하기엔 벅찬데다 적지 않은 나이도 부담이다. 그래서 보존회를 만들었고,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자 카페도 2개나 만들었다. 다음과 네이버 카페에 ‘하곡마을’로 검색하면 된다. 하곡(河谷)은 그의 호다.
그의 마지막 바람은 하루빨리 정부가 나서서 각 지역 사투리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다. “사투리에는 각 지역의 특성과 전통, 삶의 희노애락이 녹아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무형 자산인 데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무관심 속에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 있습니다. 우리 후대는 더욱 그럴 겁니다. 이제라도 민간 차원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는 것만이 우리의 언어 문화를 잃지 않는 방법일 것입니다.”
방종근 기자 jgba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