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에서 지뢰사고로 왼발 잃어
- 나이 들어 다시 태권도 시작
- 국내외 유단자 중 상위 0.1%
- 장애인 세계 기록 도전할 것
“의족 때문에 생긴 상처가 제일 힘들었다. 작은 물집이라도 잡히면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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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족 장애인 김형배 씨가 지난 4일 부산 사하구 한 체육관에서 왼쪽 발에 의족을 차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지난 4일 부산 사하구 한 태권도 체육관에서 만난 김형배(61) 씨가 왼발에 찬 의족을 보여주며 고생했던 지난 세월을 이야기했다. 김 씨는 지난해 6월 왼발에 의족을 착용하고 국기원이 주관하는 태권도 7단 승단 심사를 통과했다. 의족을 찬 장애인으로 최초다. 그는 의족을 착용한 채 기본 동작, 품새, 겨루기, 격파 심사 등을 무사히 통과했다. 특히 비장애인 7단 응시자와 대등한 겨루기 실력을 보였고 송판 3장도 완파했다. 국기원에 따르면 국내외 507만 명의 유단자 가운데 7단 유단자는 0.1%에 불과하다. 비장애인도 해내기 힘든 일을 의족을 차고 해냈다. 그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계속해서 이어나갈 생각”이라고 짧게 소감을 전했다.
건강했던 그가 갑자기 왼쪽 종아리 아랫부분을 잃은 것은 군시절 지뢰 사고 때문이다. 그는 1982년 강원도 한 군부대 수색소대에서 최전방 근무를 맡았다. 당시 그는 비무장지대에 함정 등을 만들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작전 수행 중이었다. 그는 부대원들과 지뢰가 제거된 통로로 다니며 임무를 수행했지만 어디서 떠내려온 지 모르는 지뢰를 밟았다.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서 있던 그는 너덜너덜해진 왼쪽 발을 보고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그는 “당시 북한군과 교전이 벌어진 줄 알았는데 발 쪽을 보니 지뢰를 밟은 것이었다. 아픈 것은 전혀 몰랐다”면서도 “짧은 순간 수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고 회상했다. 병원으로 후송된 그는 치료 보름 만에 결국 왼쪽 종아리 아래를 절단했다. 발이 썩어들어가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그래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군 제대 후 대학에 입학해 부산교통공사의 역무원으로 입사했다. 불혹이 된 그는 어린 시절 배웠던 태권도에 다시 도전했다. 역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잡상인 단속 중 벌어진 실랑이에서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그는 “어릴 적 태권도를 해 체력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실제 부딪쳐본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강하게 단련하기 위해 다시 태권도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도전은 쉽지 않았다. 태권도 특성상 다리를 많이 써야 했지만 우선 의족을 찬 채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의족을 찬 왼발 종아리 부위에 상처도 계속 생겼다. 물집이 잡히고 피가 났다. 그는 “조그마한 물집만 잡혀도 의족을 찰 수 없어 한동안 운동을 쉬어야 했다. 운동보다는 그냥 꾸준히 태권도장을 다녀보기로 마음먹었다”면서 “세월이 흐르니까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의 태권도 실력은 비장애인과 비교해도 손색없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전국대회에서 발 격파 부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도전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최근 한국기록원에 ‘의족 장애인 최초 태권도 7단 승단’ 분야로 공식 기록 인증을 위한 심의를 요청했다. 한국기록원은 국내 우수한 기록을 인증하고 세계기록위원회 등 해외 기록 인증 전문기관에 도전자를 대신해 인증 심의를 요청하는 기록 인증 전문 기관이다. 한국기록원은 이번 인증을 위해 김 씨가 제출한 태권도 단증, 장애인진단 결과 및 장애등록심사 결과 서류, 도전 모습이 담기 사진과 영상 등을 검토해 의족 장애인 최초 태권도 7단 승단 분야의 새로운 타이틀 생성을 검토한다.
그는 “갑자기 닥친 신체장애로 좌절의 순간도 있었지만, 태권도로 장애를 극복하고 건강을 회복했다. 이번 기록이 인정되면 태권도의 매력을 전 세계로 알리기 위해 세계기록위원회 등 세계 기록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