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스틱 도금도 없던 1970년대
- 3D 기피 속 홀로 연구개발 매진
- 미·유럽 도금전시회 쫓아다니며
- 연 매출 1500억 대 기업 키워내
- R&D에 연 매출액 4, 5% 투자
- 완성차업계 전기차 경쟁 발맞춰
- 라디에이터 그릴 기능개발 계속
- 제조·뿌리산업 국가경제 뒷받침
- 환경규제 제도적 보호책 있어야
- 지자체 차원 적극적 지원도 필요
중국의 고전 ‘채근담’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개세공로(蓋世功勞) 당부득일개긍자(當不得一個矜字):세상을 뒤덮을 만한 공로도 ‘자랑 긍(矜)’ 자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 즉, 아무리 큰 공로를 세웠더라도 그 공을 앞세우기보다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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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복 대륙금속㈜ 회장은 “기술력이 살길이다. 우리의 도금 기술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성효 전문기자 |
박수복(75) 대륙금속㈜ 회장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함께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아왔다. 회사 기술연구소에도 이런 글귀를 걸어 놓았다. 그만큼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과 의지가 남다르다. 1965년 부산공업고를 졸업하고 32세 때 거의 맨손으로 시작한 그가 연매출 1500억 원대의 자동차부품 도금업체를 일궈낸 원동력도 끊임없는 기술개발에 있다. 그런 노력으로 대륙금속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류 등에서 국내 정상급에 올랐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기술력을 지녔다. 글로벌 완성차들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제네시스 등 현대차의 라디에이터 그릴 대부분을 생산 납품하는 이유다. 그간 품질인증과 수상 기록도 수룩하다. 지난달 부산상공회의소의 2020년 부산산업대상(기술부문)을 받은 것은 그 연장선이다.
-연구개발(R&D) 비중 얼마나 되나?
▶연간 매출액의 4, 5%를 투입한다. 지금은 내가 (연구개발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주는 편이다. 돌이켜 보면 부산 업계에서 기술연구소를 만든 것은 아마 우리가 처음이었지 싶다. 더욱이 국내 중소기업으로서는 드물게 ‘기술사’가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생산라인 전반을 자동화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제품 설계부터 개발, 생산, 인도에 이르기까지 ‘풀 라인(full line) 서비스 시스템’을 말한다. (자동차의 얼굴 격으로 외관·안전성·통풍 등의 중요 요소인)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를 한 세트로 조립해 납품하는 모듈화 공정이다. 2006년 국내 업계 중 처음으로 구축했다. 현재 울산공장은 이런 자동화 시스템으로, 정부가 인정하는 ‘스마트 팩토리’다. 능률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과거에 비하면 놀라운 기술혁신이다.
▶(어떤 물질의 표면에 금속을 얇게 입히는) 도금은 액의 농도와 온도, 순도, 속도, pH(수소이온농도), 전류, 밀도 등 일곱 개 조건이 다 맞아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젊은 시절 공장에 틀어박혀 앞치마를 두르고 손으로 그걸 맞추는 실험과 연습을 숱하게 했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전부 자동으로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도금이 겉으론 비슷해 보이지만, 100% 표준을 맞춰서 100% 합격하는 것은 아무나 못한다. 99%와 100%의 1% 차이가 결국 기술력이다. 특히 도금에 맞도록 전체 공정을 자동화하는 일이 힘들었지만 결국 해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전기전자 기술의 도움도 컸다.
-도금업을 어떻게 시작하고 기술을 익히게 되었나?
▶남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을 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0년대만 해도 국내 도금기술은 아주 미천한 수준이었다. 금속 도금만 있고 플라스틱 도금도 없던 시절이다. 그래서 도금에 관한 것이라면 무조건 배웠다. 일본 서적 등을 구해서 공부하고,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해외 교육에도 열심히 나갔다. 미국과 유럽의 도금 관련 전시회를 쫓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모르는 것은 계속 묻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기술을 터득해 나갔다.
-자체 기술개발에 매진해 온 모습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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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금속 공장에서 직원들이 자동차 범퍼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대륙금속 제공 |
▶세계적인 품질로 인정받기 위해서다. 우리 완성차가 수출되는데, 그 부품의 질을 스스로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기술을 넘어서려는 의지도 있었다. 그간 우리 회사에 일본인 고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도움을 주면서도 핵심 기술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려고 힘을 써왔다.
울산 울주군 출신인 박 회장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고교 학비를 대기 힘들어 부산에서 신문배달과 구두닦이, 가정교사 등으로 돈을 벌었다. 괄시받던 도금업에 뛰어든 후 온갖 난관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했다. 2012년 부경대가 용당캠퍼스의 한미르관 1층 강의실을 그의 호를 딴 ‘다정(多情)홀’로 이름짓고 얼굴사진을 현판에 부착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부경대 전신인 부산공업고 출신의 동문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기술자 CEO라는 얘기다.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시골 촌놈이 부산공고에 들어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입학 당시 국제신문의 국립 고교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실렸던 것도 생각난다. 그런데 학비가 쪼들려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범일동 극장 앞에 가서 구두닦이도 했다. 그렇게 돈벌이를 하며 세상물정을 조금씩 깨달은 것 같다.
-제조업의 근간인 도금 금형 염색 주물 같은 뿌리산업체들이 근래 상당히 어려운 지경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들 업종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자동차·조선·섬유 등이 큰 발전을 이뤘다. 주물은 모든 기계류의 기반이 되었다. 1980년대 중소기업진흥공단이 문을 열 때, 한국 산업화의 기본으로 이들 뿌리업종 육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버림받는 신세다. 특히 환경규제 강화로 업계의 애로가 크다. 제도적인 보호책이 있어야 한다.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제조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뿌리산업을 등한시 해서는 안 된다.
-부산지역의 제조업 환경에 대해 얘기한다면?
▶(박 회장은 부산시에 아쉬움을 나타내며 에둘러 표현했다). 충남 당진에 우리 공장을 지을 때 당진시가 많이 지원해 줬다. 우리 사업장에 직접 찾아와 둘러본 뒤 그에 맞는 입지를 제공했고, 조건도 좋았다. 여름철 공장 옆에 모기떼가 들끓으니 분무차 2대를 동원해 1주일 동안 청소까지 해 주더라. 부산시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글로벌 완성차업계에서 전기차 개발 경쟁이 한창이다. 이와 함께 부품업계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모두 2만3000여 개에 이른다. 전기차에는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없어진다. 관련 업체는 거의 도산하게 된다. 따라서 업종 변경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 전기차 가격은 배터리가 30~40%를 차지하는데, 현대차는 LG 삼성 SK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있으니 상대적으로 유리하지 않겠나 싶다.
-대륙금속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우리는 이미 전기차 부문에 60억 원을 투자했다. 해외 선진 업체에도 견학을 다녀왔다. 전기차에는 그릴이 작아지고 기능화할 것이다. 예컨대, 앞에 물체가 있으면 자동으로 선다. 현재 라디에이터 그릴에 그런 기능을 넣어서 개발 중이다. 지금도 현대차가 만드는 전기차의 그릴 대부분을 우리가 맡고 있다.
-끝으로 하고 당부하고 싶은 말은?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고 싶다. 효는 인간성과 성실성에서 우러나오고, 사회의 근본이다. 그리고 자신의 뜻이 분명하면 그 분야를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 독서가 중요하다. 나는 지금도 한 달에 경제분야 신간 한두 권을 꼭 읽는다. 또한 긍정적 사고와 깊은 관찰력을 가져야 한다. 오랜 세월 체득한 것이다. 일이 잘 안 되더라도 계속 도전하고 관찰해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들 두 가지가 있으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본다.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
◇ 대륙금속 주요 이력 |
1977년 |
대륙금속공업사 설립 |
1987년 |
미국 UL, 캐나다 CSA 품질인증 획득 |
1988년 |
한국 철탑산업훈장 |
1993년 |
한국표면공학회 기술대상 수상 |
1995년 |
미국 ISO9002 품질인증 획득(국내 도금업계 최초) |
1995년 |
중기협동조합중앙회 ‘이달의 중소기업인’ 선정 |
2007년 |
친환경 무독성 3가 크롬도금 개발 성공(국내 최초) |
2012년 |
부산 중소기업인 대상 수상 |
2020년 |
부산산업대상(기술 부문)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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