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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세상을 떠난 강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2018년 국제 아카데미에서 강연하는 모습. 국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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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SNS가 뜨거웠습니다. 누군가를 애도하는 글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누군가 싶어 찾았습니다. 헉. 대중음악평론가인 강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이었습니다. 강 이사장은 지난 20일 오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64세.
이렇게 훌쩍 가시기엔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한때 이런 말이 나돌았습니다. “가요는 강헌, 팝은 임진모.” 1990년대 이후 국내 대중음악평론가 중 팝은 임진모, 가요는 강헌으로 대표된다는 의미로 회자됐습니다.
강 이사장 이름 앞에는 항상 대중음악평론가란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부산 출신인 강 이사장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뒤 같은 학교 음악대학원에서 음악 이론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영화계에 발을 들여 ‘장산곶매’라는 독립영화집단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등을 만들었습니다. 상업 영화 ‘아담이 눈을 뜰 때’·‘정글스토리’의 시나리오와 TV 드라마 ‘제3극장’의 극본도 썼습니다.
강 이사장이 대중문화계에서 명성을 얻은 것은 후배의 부탁으로 가수 김현식에 대한 평론을 쓴 것을 계기로 대중음악평론가의 길을 걸은 이후입니다.
특히 1990년대 최고의 스타였던 서태지와 신해철에 대한 평론으로 유명했습니다. ‘예감’, ‘상상’, ‘리뷰’ 등의 문화계간지도 만들었는데, 1994년 ‘리뷰’ 창간호에서 록 음악, 립싱크, 샘플링, 방송가의 부조리 등에 대해 서태지와 심도 있는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당시 리뷰를 구해서 밑줄을 치며 탐독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해철과 각별해서 신해철이 2014년 세상을 떠나자 데뷔 30주년 되던 해인 2018년 ‘신해철 : 인 메모리 오브 신해철 1968-2014’(신해철: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라는 책도 냈습니다.
강 이사장 자신도 42세 때 대동맥이 찢어져 23일간 혼수상태로 지내다 깨어나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 뒤 명리학을 공부해 2015년 ‘명리 : 운명을 읽다’라는 책을 내는 등 명리학자로도 활동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작은 인연이 있습니다. 2011년 초 강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칼럼을 부탁드렸습니다. 강 이사장은 흔쾌히 승낙했고, 2011년 4월 6일 자 국제신문 지면에 ‘음악평론가 강헌의 대중음악 산책’이란 제목으로 1회가 나갔습니다. 이후 2012년 9월 75회까지 칼럼이 연재됐습니다.
대중문화 영역에서 워낙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사람들과 교류해 강 이사장과 추억을 나눈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SNS에는 여전히 강 이사장을 추모하는 글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마 죽음 이후의 세상이 있다면 강 이사장은 신해철과 만났을 겁니다. 두 분이 생전 못다 했던 음악 이야기, 이젠 편하게 나누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