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승사 둘러싼 8㎞ 산행 코스
- 부드러운 산세·기암괴석 재미
- 장군처럼 힘 솟는다는 장군수샘
- 사불암을 부처로 모신 윤필암
- 마애여래좌상·부부바위 보고
- 연화·반야봉 거쳐 대승사로 하산
신라의 삼국통일에 불교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통일은 정치와 종교의 합작품이었다. 신라는 불교를 어떻게 정치에 활용했을까? 지난 23일 찾아간 경북 문경시 산북면 공덕산(功德山·912.9m) 자락의 사불암(四佛巖)에서 그 실례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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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문경시 산북면 공덕산 중턱에 자리한 사불암.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해 전략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
사불암은 높이 3.4m, 너비 2.3m 크기의 작은 바위에 새겨진 평범한 불상이다. 모서리가 둥그스름한 바위의 네 면에 약사불·아미타불·석가여래·미륵불이 돋을새김돼 있지만, 오랜 세월 비바람에 닳고 깎여 언뜻 봐서는 형상을 식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해발 600m가 넘는 산줄기의 툭 튀어나온 너럭바위 위에 자리 잡아 주위를 압도한다. 너럭바위 아래로 신라·백제·고구려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던 접경지대가 굽어보여, 하늘에서 내려온 네 부처가 창칼을 물리치고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불국토를 선포하는 듯하다.
그 선포의 주체는 신라이고, 불국토는 신라가 추진하는 통일왕국이다. 그에 관한 내용이 일연(一然·1206~1289)의 '삼국유사'에 나온다. "죽령 동쪽 백 리쯤 되는 곳에 우뚝 솟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 9년(587년)에 갑자기 사면이 한 길이나 되는 큰 돌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사방여래(四方如來)의 상이 새겨지고 붉은 비단으로 싸여 있었는데, 하늘에서 그 산마루에 떨어진 것이다. 왕이 가서 보고 그 바위 곁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대승사(大乘寺)라고 했다. 법화경을 외는 중을 청해 절을 맡겼다. 그 산을 사불산이라고도 한다." 진평왕은 선덕여왕에 앞서 통일의 기초를 닦은 임금인데, 하늘이 신라에 석불을 내려보냈다는 신화를 만들어 국내의 민심을 모으고 국외에 통일의 명분을 천명하는 고도의 종교정치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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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랑망태버섯 |
이번 주에는 신라의 통일 염원이 서린 대승사를 둘러싼 공덕산(사불산)을 종주한다. 산행은 대승사에서 시작해 사불암을 거쳐 대승봉과 연화봉 등 공덕산의 주요 봉우리들을 오른 뒤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다. 총거리는 약 8㎞로 3시간30분가량 걸린다. 공덕산은 전형적인 토산이라 산세가 부드러운 데다 중간중간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낮은 벼랑과 기암괴석들도 있어 다채로운 산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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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군수 |
대승사 경내로 들어가 대웅전 앞에서 왼쪽 천연당 뒤편 산길로 들어선다. 300m쯤 걸으면 윤필암과 장군수(將軍水)로 길이 나뉘는 삼거리에 이른다. 30m가량 더 가면 샘이 나오는데, 그 물을 오래 마시면 장군 같은 힘이 난다는 장군수다. 장군수에서 400m쯤 자드락길을 오르면 사불암이 눈에 들어온다. 사불암이 들어앉은 너럭바위는 산 전체를 절집으로 삼은 '불단(佛壇)'이다. 사불암의 네 부처님은 동·서·남·북으로 한 방향씩 맡아 산과 들이 물결처럼 굴곡진 중생의 땅을 내려다보며 무언의 설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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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여래좌상 |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임을 깨우쳐 주려는 것일까. 사불암에서 나오다 길을 잘못 들었다.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반대편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20분가량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 보니 원래 자리로 되돌아와 있는 게 아닌가. 부처님이 설파한 진리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깨닫게 되는 모양이다. 장군수로 다시 내려와 윤필암으로 향한다. 400m가량 가면 윤필암이다. 윤필암 왼편 바위 위에 들어선 사불전이 흥미롭다. 불상은 없고 불전의 전면에 큰 유리창이 설치돼 있다. 멀리 불전의 정면에 보이는 사불암을 부처님으로 모신 것이다.
윤필암 아래 연못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로 산행을 이어간다. 10분쯤 걸으면 묘적암으로 올라가는 길목 오른쪽 암벽에서 마애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높이 6m, 어깨너비 2.2m의 큰 불상이다. 이중연화좌대 위에 앉은 부처님의 머리와 몸 뒤로 둥근 광채가 감돌고, 머리 양쪽에는 뿔처럼 연꽃무늬가 조각돼 있다. 묘적암에 이르기 전 약수터에서 오른쪽 능선길로 접어든다. 10분쯤 걷다 만나는 갈림길에서도 오른쪽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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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바위 |
손을 꼭 잡고 선 금실 좋은 부부를 닮은 '부부바위'를 지나 30분가량 산을 오르면 쌍연봉 삼거리에 이른다. 150m쯤 더 걸으면 대승봉(820.1m)이다. 500m가량 내려가다 대승재(741m)에서 다시 오르막길을 탄다. 660m쯤 가파른 자드락길을 오르면 삼거리를 거쳐 공덕산 정상인 연화봉(912.9m)에 닿는다. 연화봉에서 630m가량 내려가면 반야봉(781m)이다. 860m쯤 더 내려가면 방광재가 나오고, 거기서 대승사로 하산한다. 700m가량 내리막길을 걸으면 대승사가 보인다.
◆주변 가볼만한 곳
- 대승사 금동관음보살좌상 꽃무늬 투각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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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동관음보살좌상 |
대승사에는 두 가지 보물이 있다. 목각탱화 관련 문서(보물 제575호)가 그 하나다. 이 문서는 '상주대승사외사사승도등장(尙州大乘寺外四寺僧徒等狀)' 등 4건이다. 등장은 소지(所志)의 일종으로 여러 사람의 이름을 연서해 관에 올려 인증 받는 문서다. 대승사 목각탱화는 원래 영주 부석사에 있었던 것으로, 1862년(철종 13) 대승사에 불이 난 뒤 새로 법당을 짓고 부석사에서 옮겨놓았다. 그 후 부석사가 반환을 요구해 시비가 일자 1876년 대승사에서 부석사의 조사전 수리비를 대주기로 하고 합의 문서를 작성했다.
다른 하나는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1호)이다. 화려한 꽃무늬가 투각되거나 따로 붙인 높다란 보관을 쓰고 있는데, 좌우로 크고 번잡한 장식을 얼굴 좌우로 대칭되게 붙여 놓았다. 사각형의 얼굴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얼굴의 양감이나 표정은 고려 말이나 조선 초 금동보살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목·배·다리의 큼직한 꽃무늬와 복잡한 장식도 이 시기를 대표하는 불상 조각양식이다.
◆교통편
- 부산서 문경행 버스 뜸해…자가용 이용해야 시간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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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필암 사불전.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유리를 설치해 마주 보이는 사불암을 불상으로 모셨다. |
대중교통수단으로는 산행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자가용을 이용하는 게 좋다. 운행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데다 운행횟수도 적기 때문이다. 부산발 문경·점촌행 시외버스의 경우, 운행시간이 3시간10분에서 3시간40분에 달한다. 차편도 오전에는 8시40분과 11시25분에 떠나는 것뿐이다. 문경·점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산행 출발지인 대승사까지 운행하는 버스도 없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