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면 새마을기념관서 출발
- 경사 완만하고 곳곳에 안내판
- 전망대 옆에 둥글넓적 바둑바위
- 성산우물은 나당연합군 주둔지
- 정상 오르면 운주산 등 한눈에
- 나뭇재엔 청록파 박목월 시비
가을에도 신록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신록은 봄에 돋아나는 새싹이니 가을에는 신록을 볼 수 없다. 이야기하려는 것은 신록이 아니라 신록의 고유 색깔인 '연두색'이다. 뽀송뽀송한 아기 피부처럼 부드러운, 유황불 지옥에 보내야 할 악인이라도 선하게 만들 것 같은 연두색. 지난 22일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봉좌산(鳳座山·626m)에 가서 그 연두색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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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포항시 봉좌산 새마을운동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기계면 들판. 신록 같은 연둣빛을 띠고 있어 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든다. |
추석이 2주나 지난 중추에 무슨 연두색이냐고 핀잔을 들을 만도 하다. 그러나 실제 기계면의 너른 들녘은 연둣빛을 띠고 있었다. 놀라웠다. 추수를 앞둔 노년의 벼가 파릇파릇한 유년의 색깔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건 그 연두색이 세대 간 화합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부모인 볏잎의 녹색과 자식인 이삭의 노란색이 어우러져 빚어낸 혼색 효과였다. '늙은 어린이', '가을 속 봄'. 가을 들녘은 동안(童顔)이었다. 농심이란 동안이 아닐까. 욕심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돌아가 들녘을 연둣빛 웃음으로 채울 수 있는 마음 말이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1915~1978)은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우 보래이 사람 한평생/이러쿵 살아도 저러쿵 살아도/시큰둥하구나/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그렁저렁 그저 살믄 오늘같이 기계장도 서고/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어우님도 만나잖은가베/앙 그런가 잉 이 사람아/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지게목발 받쳐놓고/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한잔 술로 소회도 풀잖은가/그게 다 기막히는기라/다 그게 유정한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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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바위 |
'기계장날'이란 시에서다. 시인은 기계면과 이웃한 경주 건천 출신이다. 이 시를 새긴 시비가 산행 도중 경유한 나뭇재에 세워져 있다. 이번 산행은 '연둣빛 농심'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산행은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뒤 봉좌마을 도농교류센터로 내려와 산기슭으로 난 '통통통길'을 따라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총길이는 약 13㎞로 5시간30분가량 걸린다.
봉좌산은 대구·포항고속도로에서 보면 봉황이 날개를 쫙 펴고 비상하는 형상이다. 천지 개벽 당시 이 지역이 바다에 잠겼을 때 봉황이 산 정상에 있는 바위(봉좌암)에 앉아 물난리를 피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봉좌산 지명의 유래다. 봉좌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 데다, 목월시비처럼 코스 곳곳에 안내판을 설치해 지명에 담긴 지역사를 잘 설명해줘 긴 시간 지루하지 않게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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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우물 |
먼저, 새마을운동 기념관 옆길로 들어선다. 5분쯤 가다 무학사 쪽으로 방향을 틀면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20분쯤 산을 올라 새마을전망대에 서면 기계면의 연둣빛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옆에는 둥글넓적한 바위가 있다. 기우제를 지내던 바둑바위(우제터)다. 봉우리를 세 개 넘은 뒤 성산우물에서 숨을 고른다. 성산우물 일대는 신라시대 나당연합군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봉우리를 하나 더 넘으면 기계면 봉계리와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를 잇는 지게재가 나온다. 안강 주민들이 기계장으로 가는 길목이자, 두 지역 주민들이 봉좌산에 나무 하러 왔다가 지게를 받쳐놓고 쉬던 곳이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외길이다. 거리는 1.4㎞가량. 정상에 오르면 운주산 천장산 도덕산 자옥산 어래산 비학산 침곡산 등 낙동정맥에서 뻗어나온 포항·경주·영천 등지의 명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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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좌산 정상. 이곳에 서면 포항·경주·영천 일대의 명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정상에서 도덕산 방향을 나아간다. 400m쯤 능선을 타면 심복골 삼거리에 이른다. '심복(深福)'은 어느 부잣집의 착하고 일 잘하는 머슴이었다. 심복이 죽자 마을 사람들이 봉좌산 골짜기에 묻어주었는데, 이후 그 골짜기에 심복골이란 이름이 붙었다. 도농교류센터 쪽으로 하산한다. 600m쯤 내려가면 참샘이 고개다.
참샘이 입구, 하봉골 삼거리, 나뭇재, 봉강재 앞 삼거리, 돌막골 등 이후 만나는 갈림길에서 모두 도농교류센터 쪽으로 나아간다. 나뭇재는 기계면과 영천시 임고면을 연결하는 고개다. 나뭇재를 지나 센터에 이르는 1㎞가량의 산기슭은 감·사과 과수원으로 뒤덮여 있다. 과수원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싱그럽다. "가을이 깊어지려면 아직 멀었어, 그러니 즐기라구, 지금은 즐기는 시간이야." 햇살이 발길을 붙잡는다.
# 교통편
- 포항터미널서 700번 버스
- 기계정류장서 도보 이동
부산 금정구 노포동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포항행 버스를 탄다. 오전 6시4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포항터미널 정류장에서 기계행 700번 버스를 갈아탄다. 기계환승센터 정류장에서 내려 산행 출발지까지 걷는다. 거리는 1.6㎞가량.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만 내면 된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