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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책과 세상 <22> 삶과 글이 한몸이 될 때

세상에 뿌리박은 진솔한 글엔 인간의 삶과 철학 담겨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1-03 20:57:13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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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터이자 '글터'인 거문도에서 소설가 한창훈 씨가 이웃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소원이 세 개였다고 말했다.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쓰면서 살고 싶었다"고. 올해 65세인 그는 충남 공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시인으로 살았다. 시인의 시 '들길'을 잠깐 읽어보자. '네가 들에 난 풀포기 콩포기 돔부꽃 되어 / 나를 기다리다 못해 혼자 시들어간다면 / 어쩌리 그 외로움을 어쩌리 싶어서 나는 / 오늘도 들길에 나왔다, 들길을 간다.'

복잡한 도시 한 복판에 서 있는 우리를 순식간에 가을 들길에 세워놓는 시다. 달력으로 보는 시절, 일기예보로 아는 기온이 아니라 우리 삶과 실제로 함께 하는 시공간을 생각하게 한다. 글을 쓰는 일에 있어 그저 머리를 굴려 얻은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삭혀져서 나오는 상상력과 감성은 더 큰 친화력으로 작용한다.

시월 마지막 토요일 거문도를 방문했다. 그곳은 소설가 한창훈의 글 작업실이자 삶터가 있는 곳이다. 거문도에서 태어났고 다시 거문도로 돌아와 몇 년 째 글 작업을 하고 있는 소설가와 거문도의 해안길을 걷다보니 동창, 선후배, 지인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됐다. 한창훈은 이 섬에서 '글 쓰시는 분'으로 불린다. 가끔 시인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장편소설 '홍합', 소설집 '나는 여기가 좋다' 등을 냈던 소설가는 최근 바다냄새 물씬 나는 산문집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를 펴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바다에서 낚시하고 갯것을 채취하고 맛있게 먹는 이야기, 그 바다생물과 연관된 섬사람들의 이야기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푸른 바다 물결로 채우는 책이다. 그리고 실제로 낚시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쓸 수 없는 글이다.

소설가와 함께 한 밥상에는 직접 잡아 장만해두었다가 구워낸 참돔구이가 올라왔다. 스스로를 '생계형 낚시꾼'이라고 하고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고 썼던 그의 표현이 실감났다. 그의 글에서 낚시채비 장면, 낚아 올리는 순간의 희열, 즉석에서 장만해 먹거나 손질해 저장하는 방법이 생생하게 전달됐던 것은 한창훈 안에 글과 바다가 함께 있기 때문이리라.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에서 그는 밤낚시를 이렇게 썼다. '밤낚시의 묘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들 돌아올 때 찾아가는 역행의 맛이 있고 모든 소음을 쓸어낸 적막의 맛도 있다. 넓은 바닷가에서 홀로 불 밝히는 맛도 있고 달빛을 머플러처럼 걸치고 텅 빈 마을길 걸어 돌아가는 맛도 있다.' 바다와 섬,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까이에 있는 그의 작품에는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것이 스며들어있다. 그가 그곳에 실제로 있기에 가능한 문장일 것이다.

부박한 세상이 원하는 이야기로 대박만을 겨냥하는 출판기획이 적지 않고, 그에 맞추어 써내는 작품들도 부지기수다. 어찌 그것을 문학의 본질이라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게 서울 중심이며 문학도 그렇다. 그래서 지방만 죽는다'는 인식은 지금도 강하고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서 글을 쓰면서 전국적 인지도를 얻게 된 문인을 만나보면 그분들이 서울이라는 정신없는 '중앙'에 살지 않고 있어 이런 글을 쓸 수 있구나 싶어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게 된다.

글쓰는 이가 어디 살건, 세상에 단단히 뿌리박고 자신이 속한 세상을 진솔하게 기록하는 글.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마침내 그것을 넘어선 글. 우리가 기억하고 찾는 문학에는 인간의 삶과,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 이 땅의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 나무처럼 꽃처럼 삶의 철학과 향기를 기록하고 전하는 문인들이 있어 한 사람의 독자로서 행복하다.

거문도의 한창훈 소설가는 오늘 아침에도 눈을 떠서 가장 먼저 바람을 살폈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섬사람들처럼, 바람이 어떤가에 따라 하루의 일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살펴보는 바람과 물길 속에는 사람들의 세상이 있다.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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