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그래도, 부산이 좋다 <6> 수영야류와 부산기질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소인 말뚝이도 한 잔 먹고 대부인 마누라도 한 잔 먹어, 일배일배 부일배(復一杯)에 취흥이 도도하여 대부인 마누라도 청춘이오 소인 말뚝이도 청춘이라, 양청춘 마두쳐서 동방화촉이 밝더이다.”

수영야류의 양반과장 중 양반의 관념적이고 위선적인 허위와 부패를 비판하던 말뚝이가 양반의 어머니와 동침했다고 폭로하면서 양반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장면이다. 수영야류에서 말뚝이는 패러디와 상말로 능청스럽지만, 양반에 대한 반항과 풍자는 신랄하다.
   
[사진설명-수영야류 중 저항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양반과장의 한 장면 . 얼굴이 붉고 여드름까지 난 건장한 말뚝이 () 양반들을 조롱하고 있다]
수영야류(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는 부산의 대표적 전승 민속예술이다. 제주, 안동,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초청을 받아 매년 20여차례 원정 공연을 하고, 일본 중국 그리스 독일 우크라이나 등에서 10여차례 해외공연도 가졌다. 수영야류가 이처럼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그속에 스민 ‘부산정서’가 독특한 맛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9일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수영야류 중요문화재 지정 30주년 기념공연은 한마디로 수영야류의 진면목을 보여준 한판 들놀음이었다. 당시 운집한 5천여명의 시민들은 소위 대중적이고 고급한 문화(?)에 밀려 날로 시들해지는 부산의 전통예술을 보고 감동의 눈시울을 붉혔다.

공연을 지켜봤다는 최영철 시인은 “수영야류는 수영지역민들의 놀음만이 아닌 부산시민들의 놀음이다. 양반에 대한 반항과 풍자, 거침없이 쏟아내는 막말은 부산사람들의 기질을 엿보게 했다. 이게 바로 부산정서가 아닌가 느꼈다”고 말했다.

경성대 배학수(철학과) 교수도 “수영야류의 4과장 중 말뚝이의 역할과 양반을 잡아먹는 영노의 역할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의에 대한 저항의식이 본능적으로 배어있는 부산시민들의 기질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최시인과 배교수가 말하는 수영야류와 부산기질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40여년간 야류(들놀음)를 줄곧 연구해온 민속학자 정상박(동아대 명예교수)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조선왕조 때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들, 즉 부산지역 사람들에겐 과거를 보지 못하게 했다. 부산지역은 왜구가 호시탐탐 노리는 변방지역(수영엔 지금의 해군사령부격인 좌수영이 있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늘 생명의 위협을 받고 거칠다는 조선왕조의 고정관념과 일치하는 것이다.”
   
[사진설명-수영야류 예능보유자 태덕수 (왼쪽)씨가 연희자들에게 동작을 수정해주고 있다 .]
과거도 못보게 하는 지역, 그렇지만 입에 풀칠하고 목숨부지하기 위해서는 또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곳. 이러한 상황에서 생산현장의 사회문화라 말할 수 있는 수영야류가 배태됐다. 이는 곧 노동을 중시하는 현실속의 문화로, 관념적·당위론적인 양반문화와는 태생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권위를 내세우는 양반에 대한 말뚝이의 패러디는 그래서 부산사람들의 기질과 닮아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다. 수영야류에 등장하는 양반들은 타도해야 할 부패한 양반 그 자체일 수도 있지만, 세상의 불의일 수도 있다. 이러한 수영야류의 ‘말뚝이 기질’이 3·15 부정선거와 부마항쟁 등의 저항의식으로 이어졌다는 유추는 무리가 아니다.

올해 초부터 수영야류를 전수받고 있는 캐나다인 디온 놀만(29·영어강사)씨는 “수영야류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느껴지고 무언가 모를 분노가 차오른다”고 말했다. 양반을 잡아먹는 영노역을 종종 맡는다는 디온 놀만씨가 말하는 ‘분노’는 세상의 불의에 대한 반감인지 모른다.

정상박 교수는 “고상한 척 하는 양반문화보다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생산현장에서 체험하며 터득한 소박한 생활의식, 이것이 부산의 정서이며 수영야류는 이를 노동현장에서 자연스레 표출한 놀음”이라고 설명했다.

수영야류는 보다 많은 생산과 마을의 복을 기원하는 제의 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영야류에 필요한 탈을 만들어 탈제를 지내고, 당제당의 고사, 그리고 놀이 후 탈소각제를 지내는 그런 원초적인 의식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수영야류의 4과장인 양반과장, 영노과장, 영감·할미과장, 사자무과장에 앞서 분위기를 띠우는 길놀이에는 수영지역민들은 물론이고 동래 부산진 다대포 지역민들까지 수천명이 와서 긴장대(우주목의 의미)에 등을 달아 따라 다니며 같이 놀았다고 한다. 이 점은 다른 지역의 오광대 놀이와 다르다. 다시말해 놀이꾼과 구경꾼의 구별이 없는 것이다. 수영야류는 길놀이를 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인 ‘질꾸내기’를 따라 양산도패와 기생들까지 따라붙고, 참가한 사람들과 어울려 덧뵈기춤을 추면서 장기자랑까지 한다. 참가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길놀이 행렬은 1㎞나 되었다는 말도 있다. 이러한 놀이를 통해 부산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을 다지며 말뚝이의 기질을 되새겼다.

4대째 수영야류를 전승시키고 있는 수영야류 예능보유자 태덕수(70·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씨는 “수영지역에 전통민속예술로 수영야류 외에 좌수영어방놀이와 수영농청놀이가 있지만, 수영야류는 부산시민 전체의 놀이였다”고 말했다.

수영야류의 매력에 스스로 반했다는 정상박 교수는 “수영야류를 구경할 때는 스탠드에 앉지말고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같이 땅바닥에 신문지 깔고 퍼질러 앉아야 한다”면서 “웃기면 박장대소하고, 신명나면 ‘좋다’하고 추임새를 넣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부산의 정서가 새록새록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 글=조해훈기자

/ 사진=박수현기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3. 3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4. 4“끝내 알 수 없었던 어머니 마음…그 알 수 없음이 인간이죠”
  5. 5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6. 6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7. 7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8. 8“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9. 9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10. 10해군 3600t급 디젤잠수함 ‘서희함’ 진수
  1. 1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2. 2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3. 3李 “집값 놀라울 정도로 하락…통계 제대로 알려야”
  4. 4정계 “지역언론 독립·공공성 훼손없게 계속 관심을”
  5. 5국힘 신임 부산행복연구원장에 오경은 전 구의원
  6. 6시의회 상임위 제한 폐지 논란일자 결국 심사 보류
  7. 7“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8. 8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9. 9국힘 “가덕 건설 의지 없는 정부…공사비 증액 확약해야”
  10. 10정치권 “능인선원 경영능력 불합격…국제신문 회생 동의를”
  1. 1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2. 2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3. 3“부산 해양수도·북극항로 육성, 선원 역할 중요”
  4. 4[증시와이드] 불확실성 커진 증시…우량주 중심 냉정한 대응을
  5. 5한진칼 주식 더 사는 조원태…호반과 지분경쟁 2R
  6. 62050년 중간저장시설·2060년 영구시설…정부, 방폐물 관리 3차 계획안 여론 수렴
  7. 7‘반도체 소부장’ 원익 공채에 1만2000명 몰려
  8. 8석유류·공업제품값 ‘고공 행진’ 지속…부산 10월 물가상승 4개월만에 최고(종합)
  9. 9한양증권도 털렸다…고객·임직원 정보 일부 유출
  10. 10주가지수- 2026년 11월 3일
  1. 1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2. 2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3. 3“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4. 4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5. 5해군 3600t급 디젤잠수함 ‘서희함’ 진수
  6. 6에코델타에 유치원·초·고교 추가 신설
  7. 7141개 시민단체도 노동계도 ‘국제신문 회생’ 인가 촉구
  8. 8역삼동 연쇄방화 77세 이명수(종합)
  9. 9면세유 23억 원어치 빼돌린 유통업자 집유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4일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3. 3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4. 4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5. 5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6. 6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7. 7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8. 8[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9. 9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10. 10동의과학대학교,‘제1회 부산지역 전문대학 유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