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가 직접 손으로 그린 채색 필사본이자 '대동여지도'의 모본으로 추정되는 '동여도'(위)와 대동여지도 목판본(1861년). 대동여지도는 1책에서 22책에 이르는 책자로 이뤄져 그것을 모두 펼치면 우리나라 전도가 되는 절첩식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지하 1층 전시실 큰 벽면에는 장대한 지도가 걸려있다. 22첩으로 구성된 책자들을 모아서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든 지도.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 이름을 들어보았을 지도. 바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이다.



▲절첩식 지도,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가 김정호의 작품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동여지도를 '지도'로 알고 있지, 책자 형태의 지도첩이 모여 완성된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식이 없다. 실제 대동여지도는 1책에서부터 22책에 이르는 책자가 모여져 그것을 모두 펼치면 우리나라 전도(全圖)가 되는 절첩식(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책자의 형식) 지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축적은 약 16만분의 1로 각 책은 세로 30.2㎝, 가로 20.1㎝ 크기이며, 8폭으로 접을 수 있다. 전체를 펼치면 세로 6.7m, 가로 3.3m의 크기로, 실물을 본 사람은 우선 그 방대한 크기에 압도된다. 거기에다가 보급을 위하여 그것을 목판으로까지 새겼으니 김정호는 정말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 김정호는 왜 자신의 일생을 바쳐 가며 그토록 지도 제작에 매달렸던 것일까? 무엇보다 김정호가 지도 제작을 위해 백두산에 여러 차례 올라갔다는 일화가 전해지듯 김정호는 우리 국토의 모습을 지도에 담으려는 열정을 가진 지도 마니아였다. 그리고 이러한 지도 제작 배경에는 조선후기 상업의 발달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맞물려 있었다. 상업의 발달로 성장한 상인들에게는 전국을 권역별로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정보, 곧 지도가 필요했을 것이고, 김정호는 이를 위해 절첩식 형태로 상인들이 휴대하기에도 편리하게 지도를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대동여지도에 각 고을의 거리를 십리마다 표시한 것이나 역이나 원 등 상업과 관련된 정보가 자세한 것도 이를 입증한다. 그리고 목판으로 지도를 제작하여 대량 보급을 꾀한 것은 그만큼 이 시기에 지도 수요가 광범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호에 관한 기록들

김정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지도 제작의 최고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위대한 업적에 비해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정확하게 알려진 이야기들도 많다. 이것은 무엇보다 그가 중인 출신으로서 그에 관한 공식 기록이 거의 없는 것에 연유한다. 김정호에 관해 가장 자세한 기록은 중인 출신인 유재건이 저술한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이다. 이향경문록에는 '김정호는 고산자(古山子)라 하였는데 본래 기교한 재예(才藝)가 있고, 특히 지도학에 깊은 취미가 있었다. 그는 두루 찾아보고 널리 수집하여 일찍이 '지구도(地球圖)'를 제작하고, 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는데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새겨 인쇄해 세상에 펴냈다. 그 상세하고 정밀한 것은 고금에 그 짝을 찾을 수 없다. 내가 한 질을 구해 보았더니 진실로 보배로 삼을 만한 것이었다. 그는 또 '동국여지고(東國輿地攷)' 10권을 편찬했는데 탈고하기 전에 세상을 떴으니, 정말 애석한 일이다'고 하여 김정호의 업적을 간략히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그에 관한 기록이 소략하기 때문에 출생지나 근거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출생과 사망 시기에 대해서는, 1862년에 완성된 이향견문록에서 '동국여지고 10권을 탈고하지 못하고 죽으니 애석하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이 이전에 사망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인 '대동여지'의 재간과 '대동지지'의 완성이 모두 1864년에 이루어졌음을 볼 때 '이향견문록'에 기록된 사망 시점인 1862년 이후에도 생존했을 가능성도 발견된다. 또한 그와 주로 교유했던 최한기, 최성환이나 이규경과 같은 학자와 교분이 깊었던 점을 고려할 때 대체로 1800년께에 태어나 1860년 중반까지 활동한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황해도 토산으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근거지에 대해서는 남대문 밖의 만리재와 약현(藥峴), 서대문 밖의 공덕리에 살았다는 설 등이 제시되고 있는데, 대체로 서울의 도성에 인접한 지역이었음에는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대동여지도는 전대 지도 제작의 종합판

김정호는 중인 출신으로, 중인들은 오래 전부터 지도 제작의 실무를 맡아 오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호처럼 독자적으로 지도와 지리사를 기획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언급한 것은 종래에는 볼 수 없는 양상이었다. 이것은 중인들의 의식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정호의 지도 제작에는 전대의 성과들이 큰 바탕이 되고 있었다. 16세기인 명종대에 이미 전국지도인 '조선방역도'가 제작되었으며, 17세기 이후에는 양란을 경험하고 난 이후 국경지역에 대한 보다 정밀한 정보가 요청되면서 군사 지도들이 점차 제작되었는데, 남구만의 '함경도지도'가 대표적이다. 영조대인 18세기에는 정상기, 정항령 부자가 백리척(百里尺)이라는 자를 만들어 '동국지도'를 제작함으로써 지도 제작 기술의 수준은 훨씬 높아지게 되었다. 영조대 후반에는 신경준에 의해 '여지도'가 편찬되었는데, 이 지도에도 땅의 측량과 축적을 활용한 방격법(方格法)과 백리척이 활용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정조대에도 계승되어 다양한 지도들이 제작되었는데, 열람과 휴대의 편리를 위한 휴대용 지도들도 만들어졌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전기부터 지도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조선후기에는 보다 과학적인 방법이 고안되어 지도들이 제작되었다. 김정호는 전대에 제작된 지도 제작의 성과들을 충분히 활용하고, 당시 서양에서 들어온 지도 제작 기법 등을 투입하여 지도 제작에 매진하였고, 그 결정체가 바로 대동여지도이다. 또한 김정호가 선진 지도 제작 기술을 도입하는데는 중인 학자들의 도움이 컸다. 이들은 선진 정보들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 나갔다. 김정호는 1834년 최한기가 기획한 '지구전후도'의 목판 작업을 담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규경은 그의 저작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김정호가 제작한 지도들을 널리 알리기도 하였다.



▲대동여지도와 동여도(東輿圖)

대동여지도에는 산과 산줄기, 하천, 바다, 섬, 마을을 비롯하여 역참, 창고, 관아, 봉수, 목장, 진보(鎭堡), 읍치, 성이(城址), 온천, 도로 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또한 범례에 해당하는 읍치, 진보, 창고, 역참 등의 지도표를 만들어 훨씬 용이하게 지도를 볼 수 있게 하였다. 대동여지도의 정밀도는 20세기 초 일본 해군이 보유한 근대식 지도보다 더 정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대동여지도의 모본으로 추정되는 '동여도' 23첩이 규장각이 소장되어 있는데, 대동여지도가 목판본인데 비해, 동여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그렸다. 동여도는 직접 손으로 그린 만큼 대동여지도보다 정밀하다. 목판에는 새길 수 없었던 내용까지 넣어 5000 여개 이상의 정보가 더 들어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동여도는 우리나라 고지도 가운데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전국지도로서, 그 가치는 대동여지도와도 견줄만하다. 아마 김정호는 필사본 동여도를 제작하고 대중들에게 보급을 위해 목판본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 제작에 들인 정성만큼이나, 목판에 한 고을 한 고을의 모습 새겨나갔을 김정호의 숨결이 느껴진다. 평생 지도 제작에만 매달린 한 명의 선각자로 인해 우리는 150여년 전 조선 산천의 모습을 생생히 확인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 김정호 옥사설은 일제 조작?

김정호(초상화)의 죽음에 대해서는 옥살설 공방이 오랬동안 계속되었다. 그의 옥사설은 일제시대에 제기되어 1934년에 발행된 '조선어독본'에 '김정호전'이 수록됨으로써 널리 확산되었다. '병인양요가 일어났을 때 대동여지도가 대원군에게 보고되면서, 대원군은 국가의 기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하여 지도판을 압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옥에 가두어 옥사했다'는 것이다. 그 후에도 여러 학자들이 김정호의 옥사설을 주장하면서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의 판각이나 인쇄본이 별다른 수난없이 전해져, 현재 숭실대학교 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고, 신헌 등 김정호를 후원한 정계의 실력자들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정호의 옥사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옥사설의 진원지가 일제 조작설일 가능성이 크다. 즉 김정호와 같은 위대한 지도학자를 탄압한 조선 정부의 무능과 함께 김정호가 쇄국정책의 희생양이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개항에서 식민통치로 이어지는 일제의 조선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