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절도'의 승정원 등 궐내 각사

2001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심의위원회는 한국 측이 제출한 기록유산 때문에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문제가 된 책은 바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였다. '조선왕조실록'이 이미 기록유산으로 등록된 마당에 승정원일기가 지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세계인들은 의아해했던 것이다. 전통시대 국가의 공식 연대기 기록이 2종이나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그만큼 조선시대 기록문화가 탁월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왕의 숨결까지 느끼게 하는 방대하고도 치밀한 기록 승정원일기의 자료적 가치를 보다 돋보이게 하는 요소는 앞부분에 기록된 날씨와 매일의 담당자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날씨 관련 자료는 288년의 날씨 기록이 빠짐없이 정리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지요. 날씨는 청(晴:맑음) 음(陰:흐림) 우(雨:비), 설(雪:눈) 등으로 매일의 날씨가 기록되어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오전청오후설(午前晴午後雪)' '조우석청朝雨夕晴)' 등으로 하루 중 일기의 변화까지도 기록하였으며, 비가 내린 경우 측우기로 수위를 측정한 결과까지 꼼꼼히 정리하였다. 승정원일기의 날씨 관련 기록만을 모아도 조선시대 288년간의 일기상황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고, 전통시대 기후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이러한 자료의 통계 처리는 세계 기후 조사의 표본으로 활용할 수 있다. 승정원일기가 역사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뛰어넘어 자연과학에 연구에도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 1623년(인조 1)부터 1910년(융희 4)까지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맡으면서 비서실의 기능을 했던 기관인 승정원에서 날마다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일자별로 기록한 책이다. 원래 조선을 건국한 초기부터 작성된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는 1623년(인조 1)부터 1910년(융희 4)까지 288년간의 기록 3243책이 남아 있다. 초서로 쓴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탈초(脫草:초서를 알기 쉬운 정자체로 바꿈)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원본의 책 크기는 모두 같지 않지만 대체로 가로 28㎝, 세로 40㎝ 정도이다. 승정원일기는 무엇보다도 288년에 걸친 역사 기록물이라는 점과 3243책, 총 문자량 2억4000여만 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서 세계 최대의 역사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승정원일기의 자료적 가치가 인정돼 1999년 4월9일 국보 제303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소중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승정원일기는 그 동안 역사 연구의 자료로서 그다지 활용되지 못했다. 원본 1부만이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돼 있고, 이것 또한 한문 초서(흘려 쓴 글씨)로 기록돼 해독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1961년부터 원래 초서로 쓰인 원본을 탈초하여 그 원문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한 후, 영인 간행했고,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고종 때 승정원일기를 시작으로, 승정원일기 전체를 한글로 번역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가까운 날에 승정원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고 조선후기 역사의 모습은 더욱 생생하게 복원될 것으로 기대된다.

승정원일기 서고

# 승지·주서 공동편찬… 국정자료로 활용

승정원일기의 편찬은 '승사(承史)'라고 불렸던 승지와 주서가 공동으로 담당하였으며 최종 기록은 주서들에게 맡겨졌다. 승지는 무관도 임명될 수 있었으나 주서는 반드시 학문과 문장이 검증된 문관을 뽑아서 임명하였다. 주서는 춘추관 기사관을 겸임하게 하여 승정원을 거친 문서나 기록뿐만 아니라 실록 편찬에 참고했던 국내외의 각종 기록들을 두루 검토, 정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주서는 승정원의 '사관'이었던 셈이다. 주서가 기록한 매일의 일기는 다시 한달 분을 정리하여 국왕에게 올려 재가를 받는 절차를 거쳤는데, 왕에게 올리기 전 일기가 밖으로 유출되는 것은 엄격히 금지시켰다.

'승정원일기'는 승정원에서 보관하였으며 국정 자료로 활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국가의 전례(典例) 검토나 형정(刑政)의 적용, 표류민의 처리 문제 등 복잡한 정치, 사회 현안이 제기될 때 마다 전대의 '승정원일기'를 참고하여 국정에 반영한 사례가 여러차례 나타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선 전기에 작성된 승정원일기의 원형은 찾아볼 수 없다. 1592년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있는 승정원일기는 인조대 이후에 기록되어 편집된 책들이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몇 차례 위기는 있었다. 1744년(영조 20)과 1888년(고종 25) 등 몇 차례 화재를 만나 승정원일기의 일부 책들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왕세자의 일과를 기록한 '춘방일기(春坊日記)', 조정의 신문에 해당하는 '조보(朝報)'를 비롯하여, 지방에까지 널리 수집한 각종 기록들을 정리, 종합하여 빠진 부분을 계속 채워 나갔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3243책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 왕의 건강·기분까지… 철저한 기록정신

승정원일기는 무엇보다 매일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쓰여졌기 때문에 하루의 정치, 한 달의 정치, 일 년의 정치의 흐름을 그대로 이해할 수가 있다.

또한 국왕의 동정을 비롯하여 정치의 주요 현안이 되는 자료나 중앙이나 지방에서 올린 상소문의 원문을 거의 그대로 수록하여 무엇보다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왕실 주변의 정황이 중심이 되는 만큼 국왕의 건강이나 심리상태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고, 국왕의 정무를 보던 장소와 시간대별로 국왕의 이동 상황 등을 꼭 기록하여 국왕의 움직임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국왕이 어떤 궁궐에 머물다가 어떤 곳에서 공부하고 휴식을 취했는지가 나타나 있으며, 특히 국왕이 주최했던 대규모 행사는 매우 세밀히 기록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승정원일기의 기록이 치밀한 점은 똑같은 사건에 대하여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기록 분량이 다른 것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숙종실록'의 숙종 26년 7월25일의 기록에는 좌의정 이세백 등이 평안도 지역에 학문 진흥의 분위기가 일어나 문신 출신 수령을 원하는 경우가 많음을 숙종에게 보고하는 내용이 나온다. 숙종실록에는 이 내용이 약 10행(1행은 30자)에 걸쳐 나오는데, 승정원일기의 같은 날 기록에 의하면, 이 내용은 4면(1면은 30행, 1행은 27자) 21행에 걸쳐 있다. 실록에는 300자 가량 쓴 내용을 승정원일기에는 3240자 정도로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큰 차이가 나는 까닭은 숙종실록에서는 이세백이 건의한 핵심 내용과 결과만을 기술한 반면, 승정원일기에는 왕과 이세백이 대화하는 내용을 모조리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정원일기는 비서실의 기록인 만큼 왕과 신하들이 주고 받은 대화 내용이 자세하며, 왕의 표정하나 감정 하나까지도 상세히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역대 국왕들 스스로가 자신의 병세에 대해 신하들에게 이야기하고 약방이나 의원들에게 자문을 구한 사실과 국왕의 기분과 병세 및 나아가 왕실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승정원일기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국왕의 언행, 기분 하나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철저한 기록정신, 이것이야말로 세계적으로도 가장 방대한 분량의 기록물 승정원일기를 탄생하게 한 근본 요인이 아닐까.



# 한때 '승선원일기''궁내부일기'로도 기록

국보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승정원일기 3243책 중에는 '승선원일기(承宣院日記)' '궁내부일기(宮內府日記)' 등 다른 제목의 책들이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도표 참조). 이것은 비서실의 기능을 하던 승정원의 명칭이 바뀐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전체의 책명을 승정원일기라 해도 큰 무리는 없다. 명칭이 다양한 것은 그만큼 근대사의 아픔을 승정원일기가 함께 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사의 격동 속에서도 기록은 그대로 이어져 인조대 이후 승정원일기는 288년간의 기록이 단절됨 없이 남아 있다.

<ㅏ-31>승정원일기는 왕의 최측근 기관인 승정원에서 작성함으로써 국왕의 일거수 일투족이나, 정치의 미세한 부분까지를 자세히 기록하였다. 승정원이란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는 일을 맡아보던 기관으로 오늘날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한다. 승정원은 정원(政院) 또는 후원(喉院), 은대(銀臺)라는 다른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후'는 목구멍을 뜻하는 한자어로 승정원이 국왕의 말을 바로 대변하는 중요한 곳임을 암시한다. '은대'는 중국 송나라 때 궁궐 은대문(銀臺門) 안에 은대사(銀臺司)를 두어 천자에게 올리는 문서와 관아 문서를 주관하도록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1820년대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담은 '동궐도'에 인정전 동쪽 대청(臺廳)과 문서고 사이에 '은대'라는 명칭이 나타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승정원이었다.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 '오전에 맑았다 오후에 눈' - 午前晴午後雪

지정일 지정번호 도　서　명 수록연대 책수 1999년  4월9일 국보  제303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623. 3 ~ 1894. 6 3045책 승선원일기(承宣院日記) 1894. 7 ~ 1894.10 4책 궁내부일기(宮內府日記) 1894.11 ~ 1895. 3 5책 전비서감일기(前秘書監日記) 1895. 4 ~ 1895.10 8책 비서원일기(秘書院日記) 1895.11 ~ 1905. 2 115책 후비서감일기(後秘書監日記) 1905. 3 ~ 1907.10 33책 규장각일기(奎章閣日記) 1907.10 ~ 1910. 8 33책 계 3243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