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목

최근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인물 초상화 19건을 국가지정 문화재(보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2006년 9월 11일). 이들 초상화에는 1861년(철종 12)에 그려진, 군복(軍服)을 입은 철종의 어진을 비롯, 영조가 임금이 되기 전인 연잉군 시절 때의 초상과, 조선을 대표하는 암행어사 박문수, 정조 때의 명재상 채제공의 초상이 포함되어 있다. 사진과 같은 영상매체가 없었던 시절, 국사 시간에 그 이름을 접해 보았던 역사적 인물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는 '진신화상첩'이나 '선현영정첩'과 같이 시대를 이끌어간 인물들의 초상화를 한 화첩에 함께 모아 놓은 책들이 있다. 이들 초상화집을 통하여 각 인물들의 개성 있는 모습이며, 비슷한 시기를 살아간 인물들의 형태를 서로 비교할 수도 있다. 초상화에 나타난 선현들의 모습을 통해 어떤 역사 읽기를 할 수 있을까?

▲초상화의 제작

초상화란 특정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물을 그려내는 그림으로서, 크게 보아 인물화의 일부로 볼 수 있다. 회화의 시작과 인물화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나타난 각종의 인물 그림을 통해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전체의 구도 속에서 인물이 구성요소가 된 성격이 짙다. 엄격한 의미에서 초상화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은 대개 통일신라 이후에 출현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왕의 어진을 비롯하여 승려들의 초상이 제작되었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면 국왕, 승려와 함께 공신상(功臣像)과 여성상(女性像) 등이 널리 제작되었음이 각종 문헌기록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보급과 관련하여 서원이나 사당이 지역별로 늘어나면서 이곳에 봉안할 인물들의 초상이 다수 제작되었고, 조선후기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보다 확산되어 명망있는 사대부라면 누구나가 자신의 초상화에 관심을 가지고 이름 있는 화원을 동원하여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 현재 쉽게 접할 수 있는 초상화는 대부분 조선후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서 그만큼 초상화의 수요가 늘어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명망가들에 대한 초상화 제작의 활성화는 화원들의 기량 향상 뿐만 아니라 그들의 경제적, 신분적 지위 향상에도 기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 역시 초상화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윤사국

심이지

이진규

▲'선현영정첩'과 '진신화상첩'

규장각에는 조선후기에 활약한 관리들의 초상화첩인 '선현영정첩(先賢影幀帖)'과 '진신화상첩(搢紳畵像帖)'이 소장되어 있다. '선현영정첩'은 숙종에서 정조 연간에 활약한 고위관리들의 초상화를 모아 놓은 화첩이다. 편자는 미상이며, 19세기 초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2첩, 채색필사본이며, 크기는 세로 39㎝, 가로 29.4㎝의 크기이다. 주로 영조·정조 연간에 판서 이상의 고위직을 역임한 인물들이 관복(官服) 차림을 한 모습을 그렸으며, 1790년대를 기준으로 생존하지 않는 인물은 기존의 초상화를 베껴서 그렸다. 첫번째 화첩에 그려진 인물은 이여(李○·1645~1718), 김재노(金在魯·1682~1759), 유척기(兪拓基), 이천보(李天輔), 이후(李), 신만(申晩), 민백상(閔百祥), 홍낙성(洪樂性), 조관빈(趙觀彬), 이기진(李箕鎭), 윤급(尹汲), 홍상한(洪象漢), 윤봉오(尹鳳五) 조명정(趙明鼎) 등 14명이다. 두 번째 화첩에는 허목(許穆·1595~1682), 권대운(權大運·1612~1699), 목내선(睦來善), 이명(李溟), 임정(任珽), 임원군(林原君), 서평군(西平君), 낙창군(洛昌君), 안흥군(安興君), 이림(李霖) 등 10명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초상화의 우측 상부에는 그려진 인물의 성명과 관직명을 기록하였는데, 대부분 정승, 판서급이다. 첫번째 화첩에 그려진 인물은 모두 노론계 인물이다. 이 중 김재노, 유척기, 이천보, 신만, 홍낙성 등 5명이 영의정이고 나머지 인물도 모두 판서 이상이다. 결국 첫 번째 화첩은 노론의 중심 인물로서 조선후기 최고위 관직을 지낸 사람들의 초상을 모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화첩에는 허목, 권대운, 목내선 등 남인 정치인과 종친계 인물들을 수록하고 있다. 첫 번째 화첩에 노론의 중심인물 만을 모은 것으로 볼 때 노론의 입장이 다분히 반영된 초상화집으로 볼 수 있다.

'진신화상첩'은 영조에서 순조 연간에 활동한 관리들의 초상화를 모아 놓은 화첩이다. 편자는 미상이며, 19세기 초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첩이며 각 첩은 11절 21면으로 구성되었다. 채색필사본이며 세로 44.6㎝, 가로 32.2㎝의 크기이다. 관복을 입은 22명의 관리가 그려져 있다. 주로 영조 말년 이후 육조의 판서, 참판, 참의로 활동한 인물로서 '선현영정첩'에 비해 직급이 떨어진다. 서윤(庶尹)이나 군수를 역임한 인물도 포함되어 있다. 윤사국(尹師國·1728~1809)은 정조 연간에 공조판서·형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심이지(沈履之·1720~1780)는 영조 연간에 대사헌, 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화첩에 그려진 인물 중 오재소 등의 얼굴에는 곰보 자국이 선명히 나타나 있어서 당시 천연두(마마)가 상당히 유행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곰보자국, 검은 얼굴, 딸기코 모습의 초상화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왕과 왕후, 공신, 승려, 일반 사대부, 부부상 등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이들 초상화에 대한 칭호는 왕의 초상의 경우 어진(御眞) 또는 어용(御容)이라 하였으며, 그 외에는 초상(肖像), 화상(畵像), 영정(影幀), 도상(圖像), 진상(眞像), 진영(眞影), 유상(遺像) 등 여러 가지 호칭이 사용되었다. 이들 호칭 중에서 '참 진(眞)'자가 특히 많이 사용된 것에서 터럭 하나, 곰보자국 하나라도 완전하게 표현하려 했던 우리 초상화의 성격을 읽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초상화는 정확성에 그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또한 인물의 모습 뿐만 아니라 그 사람만의 특징이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여 화면에 담아야 했기 때문에 '정신을 옮긴다'는 뜻으로 '전신(傳神)'이라는 개념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전신이란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준말로서, 형상을 통해 정신을 전해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상이 되는 인물의 인격, 기질, 품성 등 내면에 있는 정신까지 그려낸다는 것이다. 인물에 따라 정신이 반영되는 곳이라면 안면 근육이나 광대뼈, 입, 뺨 등 어느 한 곳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위의 화첩에서 특징적인 것은 인물의 얼굴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점이다. '진신화상첩'의 경우 22명의 관리 중에서 5명의 얼굴에서 곰보자국이 선명히 나타나 있다. 사진에서조차 얼굴에 보이는 흉터를 없애고자 하는 오늘날 사람들의 의식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천보 처럼 얼굴빛에 검은색이 역력한 모습이라든가 유척기의 코가 유난히 붉게 그려진 것도 당시의 초상화에서는 사실적인 표현이 최고의 가치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고위직을 지낸 관리들 상당수가 곰보였다는 사실에서, 당시의 백성들이 천연두로 고생했음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초상화를 그릴 때 곰보자국 하나하나까지 정밀하게 그려놓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히 접해볼 수 있는 것이다.

# 임금 그리는 '어용화사'는 당대 최고의 화가

왕의 초상화인 어진은 당대 최고의 화가 특히 인물화에 뛰어났던 화가의 손에 의해 그려졌다. 그러나 아무리 강심장인 화가라도 최고의 권력자인 국왕 앞에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정말 진땀이 흐르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어진을 제작하는 화원은 크게 주관화사(主管畵師)와 동참화사(同參畵師), 수종화원으로 구분되었다. 주관화사는 국왕 영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인 얼굴을 맡은 화가를 말하며 동참화사와 수종화원은 주관화사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어진 제작의 주관화사가 결정되면 영정을 도사(圖寫·생존한 국왕의 모습을 직접 그림)하거나 모사(模寫·국왕 사후에 기존의 영정이나 자료를 토대로 그림)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작업에는 주관화사를 도와주는 1~2명의 동참화사와 3~4명의 수종화원이 함께 참여하였다. 동참화사는 주관화사는 옷과 같은 부분을 그리거나 색칠하는 일을 맡았으며, 수종화원은 그림 제작에 필요한 각종 업무를 지원하면서 영정 제작 작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어진 제작이 완성되면 화원들은 벼슬의 승급이나 말의 지급 등과 같은 포상을 받았다. 특히 어진 제작을 주관하는 만큼 주관화사는 당대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았으며 '어용화사'라는 영예가 주어졌다. 이들의 명망을 들은 쟁쟁한 사대부들도 이들에게 각종의 초상화를 주문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주관화사들의 신분적, 경제적 지위도 크게 상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