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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 <29> 대책없는 삼신할매

"누구 맘대로 애를 낳아" 삼신할매는 중얼거렸어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7-01-25 17:36:54
  •  |   본지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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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오순환


할매가 아파트 입구를 막 들어서는데 상가 슈퍼에서 333호 아줌마가 걸어오고 있었어요.

"쯧쯧, 대책 없는 할망구 같으니라구. 아무리 나눠 줄 집이 없다 해도 한 집에다 아기씨를 왕창 부어버리고 오면 어떡해. 더군다나 아이가 둘이나 있는 집에."

할매 귓가에 왕삼신할매의 잔소리가 웽웽거렸어요.

할매는 큰 소쿠리를 엎어놓은 것 같이 불룩한 아줌마 배를 쳐다 보았어요. 이번에 태어날 세 쌍둥이 까지 합쳐 모두 다섯. 할매 머릿속이 띵 해지는 것 같았어요.

"쌍둥이 엄마, 미안햐. 삼신할매도 가끔 실수할 때가 있잖어. 대신 내가 옆에서 도와줌세. 나만 옆에 있으면 한꺼번에 세 명 정도는 문제없다니까."

계단을 오르느라 숨이 턱에 까지 찬 할매는 333호 현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가쁜 숨을 골랐어요. 할매보다 한참 먼저 올라온 아줌마는 거실 바닥에 앉아 사과를 깎고 있었어요. 아줌마 옆에는 332호 아줌마랑 2007호 아줌마가 수다를 떨고 있었고요.

할매는 2007호 아줌마를 보는 순간 이맛살을 한껏 찌푸렸어요. 할매가 집안으로 들어가자 장난감 뼈다귀를 가지고 놀던 애완견이 할매를 향해 가르릉거리기 시작했어요. 할매는 버선발로 애완견 엉덩이를 쿡 차버렸어요. 애완견은 낑낑거리며 뒷걸음을 치다가 2007호 아줌마 품에 달랑 안겼어요.

"쌍둥이 엄마는 재주도 좋아. 어떻게 낳았다 하면 한꺼번에 두세 명 씩이야. 그 비법 좀 가르쳐줘. 우리도 올해 황금돼지, 복덩이를 한꺼번에 안아보게 호호호."

"자기는 애가 둘이나 있으면서 무슨 소리야. 대책이 엄마가 하나 낳아야지."

"호호호, 그러네. 대책이 엄마, 올해 복덩이 하나 낳아. 복덩이 덕에 대책이 아빠 사업이 팡팡 터질지 어떻게 알아?"

332호 아줌마가 2007호 아줌마를 쳐다보며 웃었어요.

"정말? 그럼 나도 복덩이 하나 낳아볼까?"

순간 할매는 2007호 아줌마를 향해 가자미눈을 치켜떴어요.

투덜거리는 할매 머릿속에 지난 겨울이 떠올랐어요. 그날도 할매는 온종일 허탕만 치고 다녔어요. 온갖 궁리를 다 써 가며 아기씨를 나눠 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수십 집을 다녀 보았지만 아기를 원하는 집은 한 집도 없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분 나쁘게 할매를 내쫓은 사람은 2007호 아줌마였어요.

"아기요? 우린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아이 귀찮아!"

지금도 할매 귓가에 2007호 아줌마의 매몰찬 말이 웽웽거리는 것 같았어요. 쾅, 하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때문에 할매는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어요.

"누구 맘대로 아기를 낳아? 필요 없다고 할 땐 언제고 지 필요하다고 아기를 달래? 이런 간사스러운 것. 이 삼신할미를 뭘로 보는 게야!"

할매는 치맛단을 휙 돌려 감으며 쇼파에 앉았어요. 그리고 허리춤에 매달린 분홍빛 아기씨 쌈지를 보물처럼 만지작거렸어요. 오늘따라 쌈지가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었어요. 할매는 쌈지 속에 든 아기씨를 하나 둘 맘속으로 헤아려 보았어요. 오늘 나눠주어야 할 아기씨는 모두 세 개였어요.

그러나 할매는 다 저녁이 될 때까지 아기씨를 하나도 나눠주지 않고 있었어요.

"뭔 쓸데없는 고집이여! 할망구 그 마음을 인간들이 알기나 할라구. 달라고 할 때 듬뿍듬뿍 줘버려. 올해 지나면 우린 또 찬밥 신세라고."

오늘도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을 왕삼신할매의 잔소리를 털어내듯 할매는 치맛자락을 탈탈 털었어요. 치맛자락에서 쌈지가 달랑거렸어요. 2007호 아줌마 품에 안긴 애완견 대책이는 내내 할매 허리춤에 달린 쌈지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어요.

하루종일 이곳저곳 돌아다닌 할매는 무척 피곤했어요. 길게 하품을 하는 할매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왔어요. 가르릉가르릉 코도 골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책이가 할매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왔어요. 그리고는 할매 허리춤에 달려 있는 쌈지를 신기한 듯 요리조리 살폈어요. 대책이가 기분 좋은 얼굴을 했어요. 쌈지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 때문인가 봐요.

대책이가 쌈지 끈을 입으로 살살 풀었어요. 할매 허리춤에서 쌈지 끈이 풀렸어요. 그러자 대책이는 쌈지를 물고 현관문 쪽으로 쪼르르 달려 나갔어요.

한참 시간이 흘렀어요. 잠에서 깨어난 할매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왕삼신할매 목소리가 귓가에서 짜랑짜랑 울렸어요.

"아이구, 이 대책없는 할망구 같으니라구! 이젠 쌈지까지 잃어버리고 와?"

할매는 허둥대며 쌈지를 찾았어요. 333호 온 집안 구석구석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어요.

할매는 거실 바닥에 풀석 주저앉고 말았어요. 아기씨 쌈지가 없는 삼신할매, 생각만 해도 아찔했어요. 평생 셀 수 없이 많은 실수를 했지만 오늘 같은 실수는 정말 대책이 안 섰어요.

울고만 싶은 할매 머릿속에 대책이 얼굴이 바람같이 스쳐 지나갔어요.

"올커니, 그 놈이야.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놈은. 맞아, 그 강아지 뿐이야."

할매는 휘적휘적 2007호로 갔어요. 역시나 할매 짐작이 맞았어요. 부드러운 햇살이 깔린 거실 바닥에서 대책이가 쌈지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어요.

"에끼 이놈. 그 게 어떤 건데 그건 니가 갖고 놀게 아녀. 어여 이리 줘!"

할매는 대책이를 보고 고함을 질렀어요. 그러자 대책이는 으르릉거리며 할매를 노려보았어요. 어림도 없다는 얼굴이었어요. 할매가 가까이 가자 대책이는 쌈지를 물고 쪼르르 안방으로 도망을 쳤어요. 할매는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안방으로 쫓아갔어요. 대책이는 요리조리 잘도 도망을 쳤어요. 할매는 대책이를 잡기위해 이리 훌쩍 저리 훌쩍 뛰어다녔어요. 할매 치맛자락에 걸려 화장대 위에 놓인 화장품들이 넘어지고, 대책이의 발에 걸려 방바닥에 놓인 과자가 쏟아졌어요. 순식간에 방안은 엉망이 되었어요.

이번에는 대책이가 쌈지를 물고 쪼르르 부엌으로 도망을 쳤어요. 와장창 접시가 깨지고 물병이 넘어졌어요. 따라서 화분도 넘어졌어요.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대책이를 따라다니는 할매 가슴은 바싹바싹 타들어 갔어요. 대책이가 도망을 칠 때마다 쌈지의 매듭이 조금씩조금씩 풀리고 있었거든요.

할매와 대책이는 한 시간이 넘도록 씨름을 했어요. 할매는 지칠 대로 지쳐버리고 말았어요. 할매는 거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어요.

대책이도 지쳤는지 한 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어요.

이번에는 대책이가 꼬박꼬박 졸기 시작했어요. 할매는 이때다 싶어 살금살금 대책이 가까이 다가갔어요. 천천히 대책이 입에 물린 쌈지를 향해 손을 내밀었어요. 대책이가 움찔 했어요.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어요. 할매 손끝에 쌈지 끈이 살짝 닿으려는 순간이었어요.

"야! 이게 뭐야? 대책아! 아유, 난 못살아."

2007호 아줌마가 현관에 서서 발을 동동 굴리며 소리를 질렀어요. 순간 대책이가 고개를 발딱 들더니 쪼르르 안방으로 도망을 치는 거예요.

그 바람에 쌈지 끈이 툭, 하고 풀려버리고 말았어요.

"아, 안 돼!"

할매는 허둥지둥 대책이 뒤를 쫓아갔어요. 그러나 할매는 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어요. 쌈지 안에서 민들레 꽃씨 같은 아기씨들이 하나, 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안방으로 날아 들어가고 있었거든요.

석영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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