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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 <30> 건넛방 새댁 아줌마

"죽은 줄 뻔히 알 텐데도 젖을 먹이려고 저렇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7-02-01 17:41:06
  •  |   본지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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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오순환


"참, 딱하기도 하지. 형편이 그리 어려운 줄 누가 알았나 그래!"

마당에 나와 파를 다듬으시던 할머니는 쯧쯧 혀를 차며 건넛방을 바라보십니다. 두 달 전, 세를 놓은 건넛방에는 새댁 아줌마가 살고 있습니다. 셋방을 구하러 온 날 아줌마는 그랬습니다. 남편은 먼 바다로 배 타러 갔고, 아이가 없어 시끄럽지도 않을 테니 방세를 좀 내려주면 안 되겠냐고. 전에 살던 철민이, 창민이 형제의 육박전에 시달렸던 할머니는 그러마라고 하셨고 건넛방은 절간처럼 조용했습니다. 새댁 아줌마는 식당에 일 하러 가서 밤늦게야 돌아왔습니다.

"배 사고로 남편이 죽은 뒤, 여기저기서 빚 갚으라고 난리였던 모양이에요. 부부가 다 고아로 자랐으니 친척이 있을 리도 없고요. 밤낮으로 일을 하려니 할 수 없이 4살 난 애를 고아원에 맡겼다나 봐요."

시장에 다녀오신 엄마는 우연히 듣게 된 새댁 아줌마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아줌마와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을 정육점에서 만났다 하셨습니다.

"에고, 자식 떨구고 온 어미 마음이 오죽 했을꼬! 사람이 영 생기가 없어 보이더라니, 쯧쯧!"

할머니는 쯧쯧하고 혀를 차실 때마다, 습관처럼 건넛방을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미역국이 넘치나 봐요! 끓는 냄새가 막 나요!"

엄마는 파를 한쪽으로 밀치며 일어나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어가셨습니다.

쓸만한 공깃돌을 찾느라 꽃밭을 기웃거리던 나는 텃밭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지런히 머리를 빗은 텃밭에는 이랑마다 푸른 싹들이 뽁뽁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넓은 텃밭과 담벼락 사이에는 파란 지붕을 얹은 복실이 집이 있습니다. 복실이는 나흘 전에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았습니다. 처음으로 새끼를 낳아서 그런지 복실이는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복실아, 새끼들 젖 먹이느라 힘들지? 엄마가 미역국 끓여 오실 거야. 밥 좀 많이 먹고 힘내라, 응!"

나는 축 늘어진 복실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불쌍한 복실이!'

복실이 새끼 중 한 마리가 채 하루도 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어미라고 그 죽은 놈을 핥고 또 핥더라. 전들 제 새끼 죽이고 싶었겠냐? 제 몸 가누기가 힘들어 털썩 누웠는데 하필 그 약한 놈이…."

제일 먼저 그 광경을 목격한 할머니 말씀에 엄마는 아이고!하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죽은 새끼를 텃밭에 묻으려는데 늘어져 있던 복실이가 벌떡 일어나 할머니 주위를 낑낑거리며 맴돌더라 했습니다.

"경아야, 너도 들어가 밥 먹어라. 복실이는 미역국 좀 먹고."

엄마는 적당히 식힌 미역국을 양푼에 담아 오셨습니다.

"자, 너희들도 젖 다 먹었으면 엄마 밥 좀 먹이자. 옳지, 저리가 놀아라."

엄마가 복실이 앞에 밥그릇을 내려놓았습니다. 복실이는 겨우 일어나 국물만 몇 번 핥았습니다.

"큰일 났네 정말. 네가 잘 먹어야 기운도 차리고 새끼들 먹일 젖도 줄줄 나올거 아냐? 어서 좀 먹어라, 복실아."

엄마는 더 먹여 보려고 복실이 주둥이를 억지로 밥그릇에 들이 밀었습니다. 그래도 복실이는 꿈쩍 않더니 제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우두커니 엎드려 텃밭 쪽을 바라보는 복실이의 눈빛이 슬퍼보였습니다.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방을 맨 채 복실이를 찾았습니다.

공부하는 내내 복실이가 밥을 먹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어, 아줌마,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 안 나가셨어요?"

"경아 왔구나. 오랜 만에 보네. 아줌마가 몸이 아파서 하루 쉬었어."

새댁 아줌마 얼굴이 핼쑥했습니다.

"많이 아프세요? 우리 복실이도 아픈데…. 아파서 뭘 잘 먹지도 않아요."

"아까 할머니한테 얘기 들었어."

새댁 아줌마 목소리에도 힘이 없습니다. 아줌마 품에 안긴 새끼들이 낑낑 소리를 냈습니다. 아줌마는 새끼들을 한 마리씩 내려 놓은 뒤, 누워 있는 복실이 얼굴을 가만히 두 손으로 감싸 안았습니다. 아줌마의 두 손에 얼굴을 맡긴 채 눈을 뜬 복실이는 아줌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아줌마도 복실이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나는 그만 가슴이 찡해져서 슬그머니 일어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세상에 이런 일은 처음 봐요, 어머니."

한참 숙제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엄마의 호들갑에 나는 후다닥 방문을 열어 젖혔습니다. 텃밭으로 달려가니 할머니와 엄마, 새댁 아줌마가 복실이네 집 앞에 빙둘러 서 있었습니다.

"왜 그래요? 뭔데요?"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비집고 들어간 나는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복실이가 죽은 새끼에게 젖을 물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맘이 아팠으면 땅 속에 묻어둔 새끼를 파가지고 왔겠누. 사람이나 짐승이나 제 새끼 생각하는 마음은 매 한가진거야."

"그러게요. 저 보세요. 죽은 줄 뻔히 알 텐데도 젖을 먹이려고 저렇게…."

어떻게든 새끼에게 젖을 물려 보려는 복실이의 몸짓은 너무도 애처로웠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새댁 아줌마는 연신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 나는 잠결에 무슨 소린가를 들었습니다. 먼 파도소리처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들.

"제 사정을 속여서 미안합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다 보니…."

"괜찮아요, 괜찮아. 속인 게 뭐 있다고.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자식은 옆에 두고 키워야지. 고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어미 떨어져 고생을 하나 그래. 잘 생각했어, 새댁."

할머니가 새댁 아줌마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나 봅니다.

"호성이라고 했죠? 낮에는 어머니와 제가 호성이 돌봐 줄게요. 걱정 말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으흑흑흑~."

나는 달콤한 잠 속에 다시 발을 들여놓으며 잠꼬대처럼 혼잣말을 했습니다.

'새댁 아줌마, 학교 마치면 내가 놀아줄게요. 호성이, 빨리 데리고 오세요.'

다음 날 아침, 복실이가 밥을 먹는다는 소리에 잠이 깬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한세경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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