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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 <34> 주름살 한 개

어떻게 하면 엄마의 주름살을 없앨 수 있을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7-03-01 18:19:45
  •  |   본지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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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오순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 들판에 노란 나비가 나풀나풀 날고 있었어요.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는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했어요. 아기는 아지랑이 사이로 나비를 잡으러 뛰어 다녔어요. 그러다가 그만 '콩'하고 넘어졌어요. 엄마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고요. 상처 난 아기의 모습을 본 엄마의 가슴에 까만 멍이 들었어요. 엄마의 이마에 가느다란 주름살 한 개가 생겨났어요.

"귀여운 우리 아기, 잘 자라야 할 텐데…."

엄마는 아기가 아파 밤새도록 간호를 할 때도 상처에 약을 발라 줄 때도 가슴이 아팠어요.

엄마는 밤마다 기도를 했어요. 아기가 탈 없이 크게 해 달라고 말이에요. 그러면 아기 천사들이 아기의 머리맡에서 놀다가 가곤 했어요. 그 때마다 아기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고요.

아기는 엄마의 기도 덕분으로 무럭무럭 자라났어요.



어느 날, 아기는 가시덤불에 갇혀 울고 있는 아기 토끼를 보았어요. 아기도 따라 울고 싶었어요. 아기 토끼가 너무 불쌍해 보였거든요. 아기는 얼른 나무작대기를 가지고와 가시덤불을 헤치고 아기 토끼를 꺼내 주었어요. 엄마는 아기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아, 우리 아기가 착한 일을 했구나! 정말 기특하다. 아가."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였어요.

아기는 자라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어요. 친구가 아기 발을 밟았어요. 아기는 정말 아팠어요. 화가 나서 주먹을 치켜들었어요. 친구가 겁먹은 얼굴을 했어요. 아기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친구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실수로 그런 것 같았어요. 아기는 치켜들었던 주먹을 내려놓았어요.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말했어요.

"우리 아기가 점점 근사한 아이로 크는구나.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 되겠구나."

그날 밤, 아기는 엄마의 잠든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어요. 엄마의 얼굴에서 깊게 팬 주름살을 보았어요. 아기는 조막만 한 손으로 엄마의 주름살을 만지며 말했어요.

"엄마, 엄마 이마에 있는 주름살이 왜 이렇게 커요? 꼭 할머니 같아요."

엄마는 아기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어요.

"엄마가 할머니 같아 보여 싫으니? 아기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주름살인데 우리 아기 눈에는 보이는 모양이구나."

아기는 아이들이 엄마를 할머니라 놀릴까 봐 싫었어요.

"아가야, 엄마는 네가 싸움을 하고 와도 내 아들, 공부를 못해도 내 아들, 네가 어떤 모습으로 있든 내 아들이란다. 그렇지만 엄마가 너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플 때마다 이렇게 주름이 자꾸 깊어지는구나."

아기는 엄마가 자기 생각만 하면 주름이 깊어진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어요.

아기는 방으로 돌아와 이불 속에서 곰곰이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엄마의 주름살을 없앨 수 있을까?'

깊은 밤까지 생각을 해 보았지만 엄마의 이마에 있는 주름살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아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가 늙어 가는 것 같아 슬펐어요.

아기는 엄마 품에서 자고 싶었어요. 살금살금 엄마가 자는 곳으로 갔어요. 달빛에 비친 엄마의 얼굴이 보였어요. 엄마의 얼굴에 보름달이 환한 웃음으로 내려앉았어요. 엄마 이마에 있던 주름살이 엷은 달빛에 덮였어요.



그렇지만 엄마의 이마에 있는 깊은 주름은 그대로예요. 아기는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 어떻게 하면 엄마 이마에 있는 깊은 주름을 없앨 수 있어요?"

"음, 이 주름은 우리 아기가 커서 어른이 되어야만 사라지는 주름이란다. 네가 어른이 되면 엄마 이마에 있는 이 주름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게 된단다."

아기는 엄마의 주름이 없어지려면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슬펐어요. 아기는 엄마 품을 파고 들었어요. 엄마의 가슴 속에서 아기를 사랑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엄마의 숨결이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듯 아기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었어요. 아기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요. 엄마의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났어요.



아기는 엄마에게 웃음도 주었지만 가슴에 멍이 드는 슬픔을 더 많이 주곤 했어요.

어느덧 아기의 코 밑에 거뭇거뭇 수염이 돋아나기 시작했어요. 목소리도 굵게 변해갔어요. 친구와 싸워 다치기도 하고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아 엄마를 애태우기도 했어요. 엄마가 걱정 어린 말을 하면 큰소리로 반항을 했어요.

"엄마, 저도 이제 많이 자랐는데 아기처럼 대하지 마세요."

"아가, 엄마는 네가 아무리 커도 이 엄마의 아기인 걸 어쩌니?"

"제발, 그만 좀 내버려 두세요. 저도 이제 다 컸다구요."

그럴 때 마다 엄마의 가슴은 점점 더 타들어 갔고 주름은 깊어만 갔어요.



세월이 흐르고 흘러 엄마의 아기는 어른이 되었어요. 어른이 된 아기는 엄마의 아늑한 품과 숨결을 잊었어요. 엄마의 이마에 생긴 깊은 주름까지도 까맣게 잊고 지냈어요. 오로지 높은 곳을 향하여 자기의 꿈만을 쫓아 갔어요. 어느덧 엄마의 아기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쉰이 넘은 중년 아저씨가 되어 있었어요. 꿈을 쫓던 아기는 무척 지쳐 있었어요. 쉬고 싶었어요. 그제서야 아기는 엄마의 품이 그리웠어요.



엄마의 아기는 일흔이 넘은 아픈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어요. 아기는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엄마의 이마에 있는 깊은 주름살을 보았어요. 온 세상을 다 움켜 쥘 것 같은 커다란 손으로 엄마의 이마에 있는 주름살을 만졌어요.

"어머니, 아직도 그 옛날 제가 아장아장 걸었을 때 보았던 주름이 그대로예요. 제가 어른이 되면 어머니의 이 주름이 사라진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더 깊어졌어요."

엄마는 아기의 커다란 손을 꼭 잡으며 말했어요.

"아가! 남들이 보기엔 넌 어른일지 몰라도 아직도 넌 내 아기인 걸? 그러니 이렇게 주름이 없어지지 않을 수밖에.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너를 내 가슴에 담고 있는 한은 없어지지 않는 고마운 주름이란다. 난 이런 깊은 주름이 있어도 우리 아기가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할 뿐이란다. 아가야!"

엄마는 주름진 얼굴로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환하게 웃으셨어요.

낙엽처럼 가벼워진 엄마 옆에서 산처럼 우뚝 선 아기는 오랜만에 엄마의 품에 얼굴을 묻었어요. 엄마의 품은 어렸을 때 느꼈던 그대로 넓고 따뜻했어요. 엄마의 가느다란 숨소리엔 아직도 아기의 가슴 속으로 졸졸졸 흘려보내는 물결 소리가 들렸어요. 엄마의 메마른 손을 잡은 엄마의 아기는 목이 메었어요. 이슬 맺힌 눈으로 엄마의 이마에 있는 깊은 주름살을 보았어요. 주름살 안에는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수많은 주름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어요.

안덕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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