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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83> 봄맞이 '三多의 섬' 제주도(하)제주도를 품은 시인들

섬 사랑의 여운, 詩가 되고 예술이 되다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09-03-04 21:43:2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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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전기공' 이대흠 시인.
기자에게 '대상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것'은 금기다. 냉정하게 관찰하고 기록해야 한다.

모슬포항을 떠난 배가 마라도에 닿았다. 마라도에 올라섰다. 바람이 불었다. 어디서나 수평선이 보였다. 바다는 파랬고 수평선 안쪽의 마라도 땅은 풀이 자라 고 있었다.

기자에게 대상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것은 금기…냉정…관찰…. 금기…냉정…관찰…. 마음 속으로 곱씹었던 이런 말들이 점점 흔들렸다. 마라도의 바다 때문인지, 바람 때문인지 이런 딱딱한 말들은 이명처럼 웅웅거리며 조금씩 멀어지더니 어느새 들리지 않게 됐다. 금기를 어겼다. 고작 2시간의 방문. 마라도에 빠져들었다.


■ 마라도 큰애기가 된 시인 류외향

지난 1일. 2박3일 제주도 문학기행의 마지막 날 우리가 마라도에 갔던 것은 류외향(36) 시인 때문이었다. 류 시인은 지난 달 낳은 첫 아기를 포대기로 감싼 모습으로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와 함께 마라도 너른 풀밭을 걷기도 했다. 발치에선 푸른 바닷물이 찰랑거렸다. 마라도는 흔한 봉우리 하나 없이 낮은 섬. 사방에서 거칠 것 없는 바람이 불어와 전날 서귀포에서 제주도의 이대흠 시인과 늦게까지 마신 술의 체취를 모두 증발시켰다.

지난달 낳은 아기를 포대기에 감싸고 일행을 안내하는 류외향 시인. 뒤로 마라도성당이 보인다. 남편 원종훈 씨는 마라도 명물 톳자장면을 장만하느라 함께 걷지 못했다.
단순미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때로 놀라워서 지극히 정교하고 엄격한 것이 주는 미적 체험의 희열을 능가한다. 평평한 섬 위에 절 성당 교회가 서 있고 음식점과 살림집이 조금 있을 뿐, 바다와 땅만으로 이뤄진 마라도의 단순미에 빠져 함께 걷는 동안에도 아기를 안은 류 시인에게 몇 마디 물어보지 못했다. 이러면 안되는 거였다.

이때 나서서 도와준 사람들이 문학기행 일행으로 함께 간 독자들이었다. "마라도엔 언제부터 사신 거예요?" "아기가 예뻐요." "시인이 만들어주는 자장면이네요." 독자들의 질문이 꼬리를 이었고 류 시인은 조금씩 마라도 정착기를 들려줬다.

1973년 경남 합천 출신인 류 시인은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나왔고 199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인이 됐다. 시 잘 쓴다는 소문도 났고 시집도 냈다. 경기도 평택에 살던 그는 2006년 말 마라도의 국토 최남단 절 기원정사가 시인들에게 창작공간을 개방하자 마라도에 찾아와 시를 썼다.

그때 10여 년 전부터 마라도에서 살고 있는 부산 출신의 횟집 주인 원종훈 씨를 만났다. 2007년 1월쯤이었다. 몇번 만난 끝에 원 씨는 류 시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류 시인도 좋은 느낌이 있었지만 어찌어찌해서 곧 마라도를 떠나게 됐다. 이번엔 원 씨가 움직였다. 류 씨를 찾아 평택으로 날아갔다. 2007년 초겨울 두 사람은 결혼했고 마라도에 정착했다. 부부는 횟집을 접고 마라도에서 네번째 자장면집인 '마라원짜장'을 열었다.

제주도 중문 출신의 정군칠 시인.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저기 보이는 건물이 제가 그때 기원정사에 머물며 시를 썼던 곳이고요. 마라도는 제가 남편에게 반한 곳이고 시인들도 많이 찾아와요. 여기 산 지 1년 쯤 됐는데 눌러살지 말지 고민은 되지만 이곳 삶은 제게 큰 의미가 있어요." 류 시인 부부는 웃는 얼굴이 복스러웠다. 문학과 마라도가 그들을 맺어줬다.


■ 서귀포에서 만난 사람들

서귀포의 시인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봄맞이를 하고 있다. 해마다 겨울 끄트머리가 되면 '시로 봄을 여는 서귀포'라는 행사를 서귀포문인협회 등이 주축이 되어 연다. 올해로 10회째. 올해는 문학기행 일행이 마라도에 들어가기 전날인 지난달 28일 행사가 열려 그 현장을 볼 수 있었다. 행사 장소는 서귀포시에 있는 '서귀포 70리 시공원'. 서귀포를 주제로 삼은 시 1000여편 가운데 시 13편, 노래 3편을 골라 시비에 새겨 문학공원으로 꾸며놓은 곳이다.

이곳에서 제주도 시인들과 서귀포시장까지 초청해 시낭송회를 연 것이 1부. 한기팔 시인이 '한반도의 봄은 서귀포에서 시작된다…'로 시작하는 시를 읊을 때 '과연 그렇구나' 싶었다. 그뒤 모두 서귀포항으로 몰려갔다. 그리고는 준비된 여러 척의 배에 올라타 봄을 맞으러 바다로 나갔는데 이것이 행사의 핵심이었다. 덕분에 문학기행 일행 도 '봄맞이 서귀포 선상문학투어'를 즐기는 행운을 누렸다.

이렇게 일행이 서귀포 곳곳에서 '한반도에 가장 먼저 닿는 봄' 속을 헤맬 수 있었던 데는 정군칠 시인의 도움이 컸다. 제주도 중문 출신 토박이인 정 시인은 1998년 '현대시'로 등단했고 시집 '수목한계선'으로 주목받았다. 정 시인은 이곳의 사정을 가장 환하게 알고 있어 구석구석을 보여주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외지에서 온 일행을 배려하며 마치 그림자처럼 움직였는데 그것이 그가 고향 제주도를 사랑하는 한 방식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가 정군칠을 품어주고 정군칠이 제주도를 품는 방식과는 또 다르게 제주도를 품고, 제주도가 품어준 시인 이대흠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이대흠 시인은 1994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1999년에는 '작가세계'를 통해 소설가로도 이름을 올렸다. 시힘 동인이기도 한 그는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등으로 시단에서는 꽤 알려진 존재다. 그가 펴낸 장편소설로는 '청앵'이 있고 고향 사투리로 써낸 빼어난 산문집들로 인해 '전라도 말 지킴이'라는 별칭도 있다.

"몇년 전 입시학원강사 자리가 나서 제주도로 왔제.(그는 자존심을 내세울 만한 잘 나가는 강사였다는 것이 주위의 전언) 근데 일이 잘 안 풀려 지금은 다른 일을 허지. 공사장 전기기술자여. 그런다고 걱정스레 볼 건 없어. 기술이 좋아서 이쪽에서도 알아주거든." 이야기가 깊어지자 그는 속내까지 털어놨다. "시 소설 산문을 쓰고 있고 고고학 종교학 문학 신화 등등에 관심이 많거든. 근데 제주도는 말 그대로 신화와 전설의 땅이여. 온 섬에 신화와 전설이 널렸어. 제주도 분들도 이 쪽을 파고 있는데 외지에서 온 이대흠이 나름의 시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있겠다 싶었지. 토마스 벌핀치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듬어 세상에 알렸다면 제주도의 신화와 전설도 세계에 내놓을 수 있겠구나. 이건 내거다 싶었지."

원래 거짓말을 뜻했던 속어 '구라'가 '말을 정말 재미있게 잘한다'는 정도의 뜻의 친숙한 일상어처럼 쓰이는 건 문화예술계 덕택이다. '황구라' 황석영, '백구라' 백기완 등이 원조니까. 그런 뜻에서 이대흠에게 '이구라'의 작위가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이야기하다 밤을 새고 말았다. 서귀포의 하얀 밤.


■ 기당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의 위력

서귀포에 왔다면, 그것이 문화예술기행의 발걸음이었다면 서흥동의 기당미술관과 시청로의 이중섭미술관을 빼놓지 말자.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 사업가 기당 강구범이 건립해 1987년 서귀포시에 기증한 기당미술관에는 우성 변시지의 작품을 모아놓았다.

변시지는 한국의 생존 화가로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전시돼 있을 정도다. 이런 유명세를 떠나 그의 그림에 제주도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황토색 바탕에 말, 바람, 바다, 쪽배, 사람 등의 단순한 아이콘으로 표현한 그의 제주도는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제주도의 인상을 심어준다. 여기 또한 외지 사람에겐 덜 알려진 명소 중의 명소로 꼽을 만했다.

서귀포의 따뜻한 정경이 잘 보이는 언덕에 이중섭미술관과 이중섭이 1년 남짓 살던 집이 있다. 이중섭의 네 식구가 살았다는 좁디 좁은 방, 이중섭의 작품들과 동료였던 장욱진 이상범 등 한국 최고 화가의 그림을 걸어놓은 미술관을 보았다. 이중섭은 제주도보다 부산에서 더 오래 살았는데 부산은 뭘 했던 걸까. 이중섭미술관 근처 도로 이름은 이중섭거리였다.

신문학기행 참가 문의=부산문화연구회 (051)441-0485 동보서적 803-8000 www.문학기행.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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