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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85> 박범신과 함께 한 충남 논산

가난도 글로 이겨낸 영원한 청년작가의 문학적 자궁속을 거닐다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09-04-28 19:39:10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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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63). '지금 한국 문단에서 누가 우뚝한가, 정신이 젊은 작가는 누군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에서 박범신이라는 이름을 뺀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내 속에는 늙지 않은 짐승이 한 마리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놈의 형상은 낙지를 닮았는데 내가 소설을 쓰고 있을 땐 조용한데 글을 쓰지 않으면 이놈이 마구 움직이면서 내 옆구리로 삐져나와 나를 잡아먹으려 덤비죠. 그놈한테 안 먹히려면 쓰는 수밖에. 나는 살려고 씁니다."

강경읍에 솟은 해발 56m 언덕의 이름은 채운산. "강경의 모든 장소가 내 소설에 나온다"고 말할 만큼 이 고을과 인연이 깊은 작가 박범신은 강경읍이 잘 보이는 채운산 꼭대기에서 문학기행 일행을 맞으며 독자들이 궁금해하던, '청년작가'라는 별명의 비밀과 그렇게 청년으로 사는 내력을 들려줬다.

"내면의 사회적 자아, 존재론적 자아, 창조적 자아가 어느 정도 일치하면 살기도 수월할 텐데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예민해서 고독하고 그 고독이 두려워 글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작품을 한 절반쯤 쓰고 있으면 다른 이야기나 인물들이 찾아와서 '내 이야기도 좀 써달라' '언제 써줄거냐' 하고 소동을 피워요. 젊은 작가들이 쓸 소설 소재가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곤 하는데 저는 그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요. 나는 쓸 게, 써야할 게 무지하게 많거든요."

청년작가라는 별명, 영원한 현역이라는 설명이 어색하지 않았다.


■ "인물 많고 마음 따뜻한 의리의 고장"

강경읍 황산근린공원의 박범신문학비 앞에 선 작가 박범신.
충남 논산은 작가 박범신의 고향이다. 그의 고향에 와서 그를 만났으므로 논산에 대해서도 좀 알고 싶었다. 그 점은 쉽게 해결됐다. 논산 연무고 교장으로 충남문협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논산문협 회장을 맡고 있는 권선옥 시인, 국방대의 논산 이전 촉구 운동을 펼치느라 삭발을 한 채 나온 김형도 논산시의원, 박범신 작가 고향 마을의 읍장님과 이장님들이 특산물 딸기까지 들고 우리 일행을 맞이해주러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들은 논산 쪽으로 오줌도 안 눈다고들 하잖아요. 군 입대를 위해 논산훈련소 와서 겪었던 고생 때문에요. 근데 논산은 의리의 고장입니다. 권력자들의 위협에도 아랑곳 않고, 한을 품고 절명한 견훤, 계백, 성삼문의 묘나 사당을 모셔놓은 곳이 논산이고요. 논산훈련소가 중심에 떡 버티고 있고 저기선 1년에 수십 만발 총소리가 나고 수류탄 훈련도 하는데 지금까지 60년 동안 한번도 '훈련소 나가라, 이전해라'는 소리 안 한 사람들이 논산 사람들입니다. 최근에 방음벽을 설치했어요. 60년 만이죠." 이렇게 논산의 마음을 설명한 사람은 김형대 시의원이었다.

"논산에선 인물이 많이 나왔습니다. 김관식 박용래 윤백남 같은 문인이 나왔고 박범신 선생도 나왔죠. 연무읍 봉동리 두화마을 박범신 생가터와 강경읍 채산동 박범신 작가가 살면서 신춘문예 당선통보를 들었던 옛집을 지자체가 매입해 기념하고 보존할 수 있게 지역민과 지자체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임성규 논산시장도 김관식 유택을 정리하는 등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고 박범신이라는 작가의 존재감과 가치는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우리 문화인들이 더 노력하면 잘 풀릴 것이라 봅니다." 권선옥 시인은 '박범신'이라는 당대의 걸출한 문화예술 브랜드를 논산의 예술 문화 관광으로 연결시켜 상생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 지역민이 나서서 만들어낸 문학비

강경읍내 채운산 꼭대기 정자에서 작가 박범신 씨가 독자들에게 강경에 얽힌 자신의 문학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연무읍과 강경읍은 논산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특히 강경은 "전국 젓갈류의 절반이 거래된다"는 젓갈시장과 "나의 문학적 자궁은 강경읍의 갈대밭이었고 '시진읍' '겨울아이'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통해 나는 강경을 세세하게 그렸다. 나만큼 강경을 상세하게 그린 작가도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박범신의 문학 현장이 모두 있다.

내려 꽂혔다가 그대로 반사되며 눈을 부시게 했던 봄빛이었다. 관촉사 은진미륵석불, 강경읍 채산동 박범신 옛집, 연무읍 두화마을 생가터, 채운산, 옥녀봉, 함열상회 등 강경젓갈시장 일대를 작가와 함께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강경읍 황산리 금강제방 강경젓갈전시관 맞은 편 황산근린공원의 박범신문학비를 만났다. 사연이 특별했다.

"'강경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이라고 강경읍내 이장 72명의 모임이 있는데 이분들이 돈을 모았어요. 이런 노력에 힘입어 박범신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도 생겼죠. 그러다 행정절차가 꼬여 난관에 부딪쳤는데 이번엔 임성규 논산시장이 나서서 도와주는 겁니다." 권선옥 시인의 설명을 정리하면, 마을 이장들이 팔을 걷어부쳤고, 문화인들이 함께 나섰으며, 결국 시장까지 나서서 거들었다는 얘긴데 이런 식으로 지역사회 저변에서 위쪽으로 여론이 수렴되면서 생긴 문학비가 그렇게 흔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뭘 그런 걸 만드냐'고 했고 지금도 쑥스럽죠. 그런데 막상 완공되고 나서 보니까 문학비가 조금 비뚤어져 있는 거야. 그래서 이장 대표한테 '아니, 돌(비석)이 왜 비뚤어요'하고 물었더니 이장 대표가 '선생님이 원래 삐딱하시잖유.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셔유' 그러는 거야." 박범신 작가의 회고가 특유의 입담에 실리자 좌중에선 웃음이 터진다.


■ 73일 결석을 감행한 고3시절 강경의 추억

이 삐딱함을 박범신은 부인하지 않았다. "내게도 세속적인 기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팔자를 바꿀만한 찬스들을 제안받았죠. 전 그걸 모두 삐딱하게 거부했습니다. 소설을 써야 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문학을 해야 했으니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명지대 문창과 교수로 초빙됐던 그는 히말라야에 가려고 교수직을 그만뒀다. 그러자 학생들이 난리가 났다. '박범신 돌려달라'고 한 달을 아우성쳤다 한다. 대학 측은 박범신에게 요청을 했고 그는 다시 교수로 부임했다. 이런 에피소드를 만들어낼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강경은 박범신 문학의 자궁이다. "돈이 없어 대학에 보내지 않겠다는 아버지 말에 반발해 고3때 73일 동안 결석을 감행한 적이 있어요. 그때 가방 들고 나와서 저기 강경젓갈전시관 넘어 있던 갈대밭으로 갔죠. 거기서 책 읽고 글 쓰고 도시락 까먹고 그러다 통학버스 타고 집에 가는 거죠." 그때 박범신의 문학은 싹텄을 것이다. 채산동의 옛날 살던 집은 지금도 그대로 있다. 1970년대 초 강경여고 교사 시절 박범신이 신접살림을 차린 집이다. "방이 2개 였는데 하나는 부모님이 쓰셨고 하나는 우리 부부가 썼죠. 방의 천장이 낮아 아내가 해온 장롱이 들어가질 않아서 구들을 10㎝ 파내고 장롱을 들였지. 그때 한창 신춘문예를 준비하느라 무척 예민해져서 방안에서 원고를 썼는데 옆에 있는 아내한테 짜증을 자주 냈지. 그랬더니 아내는 우물이 있던 마당에 나가 하늘을 보면서 한참 있다가 들어오기도 하고…." 고향마을 사람들이 "지독히 가난했다"고 기억할 정도였던 그의 가난은 오랫동안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 역사인물 처음 다룬 장편 '고산자' 곧 나온다

이번 문학기행의 주제 도서였던 박범신의 장편소설 '더러운 책상'은 작가의 청소년 시절 논산을 섬세하게 담는다. 하지만 '더러운 책상'은 흔히 봐오던 성장소설이 아니라 청소년의 내면의 빌려 인간의 정신세계를 강렬하게 그려낸 정신의 성장소설이다. 동행한 동보서적 '책소식' 편집장 박현주 씨가 "'더러운 책상'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떠올리게 한다"며 문장을 소개하자 옆에 있던 동의대 장희창(독문학과) 교수는 그 대목을 읽고 "자신의 내면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 더 높은 정신의 세계를 보여주는 비판적 지성 귄터 그라스의 작품세계와 닮은 점이 많다. 깜짝 놀랐다"고 답했다. 장 교수는 귄터 그라스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한 독일 문학 번역가로 그라스를 몇 차례 만난 바 있다. 박범신은 일행과 헤어지기 전 "곧 새 장편소설 '고산자'가 나온다"고 소개했다. 역사소설 또는 역사에서 소재를 취하는 소설은 의식적으로 쓰지 않았던 그가 고산자 김정호의 내면에 왜 끌렸고 어떻게 그려냈는지 호기심이 커져만 갔다.

신문학기행 참가 문의=부산문화연구회 (051)465-0485 동보서적 803-8000 www.문학기행.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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