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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88> 문인수 시인과 함께 한 경북 성주

詩人 낳고 詩 낳은 고향집·외양간 그리고 아버지

'별고을' 경북 성주에서 만난 문인수 시인

시를 통해 감싸고 지켜낸 그의 고향 추억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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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로 유명한 경북 성주 한개마을을 찾은 문인수 시인
버스가 출발하면 먼저 간식이 든 봉지를 나눠준다. 다른 주전부리들도 있지만 이 간식봉지의 핵심은 추억의 삶은 달걀과 소금이다. 좀 있다 생수와 함께 자료집을 배포한다. 자료집에는 해당문인의 작품과 해설, 그리고 기행(紀行)에 필요한 정보를 담는다. 때가 되면 현지 토박이 문인들이 소개해준 식당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는다. 현지로 가는 길이나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는 세계 명작영화 DVD를 상영하고 모든 참가자들에겐 동보서적이 제공하는 5000원 권 도서상품권을 선물로 준다.

여기까지는 이 문학기행의 공동주최 측인 동보서적과 부산문화연구회가 문학기행 때마다 제공하는 '고정 서비스'에 해당한다. 당일 여정 기준 참가비 5만 원인 이 문학기행의 호응도는 이 고정 서비스를 넘어선 어떤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이는 두 말할 것 없이 초청문인이다. 매달 한 차례 이달까지 모두 88회 진행된 이 문학기행에 모두 참가한 동보서적 박현주 '책소식' 편집장은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초청문인이 현지에서 독자들을 만나 잘 교감하면서 진솔하고 적극적으로 문학기행에 임할 때 참가자들의 호응도는 배가 된다."

지난 26일 문인수 시인과 함께 하는 성주 문학기행에 참가한 독자들 중 경북 성주의 '성'자가 별 성(星)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 태반이었다. 광주가 '빛고을'이라면 성주는 '별고을'인 셈인데, 일행 중 이 예쁜 이름의 내력을 아는 이가 별로 없었을 만큼 성주는 멀게 느껴진 고을이었다. 그런데 단박에 이 먼 거리감을 좁혀줘버린 이가 이 문학기행의 주인공 문인수 시인이었다. 그가 '진솔하고 적극적으로 독자와 교감'한 덕분에 호응도는 쑥쑥 올라갔다. 문 시인과 함께 일행을 맞이해 왜관의 구상문학관을 안내해준 여환숙 시인, 성주문화해설사 박신자 씨, 구미시청에서 일하며 시 콘서트 등 문학대중화 활동을 펼치는 권미강 씨 등의 환대도 여름날 성주 기행이 반짝반짝 빛나는 하루가 돼게 했다.


■ "나는 고향의 범위를 작게 잡습니다"

고향집 마당에서 독자와 담소하는 문 시인과 독자들.
처음엔 이번 문학기행이 조금 무겁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시와 시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대구문학상, 노작문학상, 금복문화예술상…. 뜨르르한 시문학상을 거의 수상했을 만큼 문인수 시인은 한국 시단에서 깊은 시 정신과 시적 성취를 공인받고 있는 시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연륜과 높이에 비하면 대중에겐 덜 알려져 있다. 아마 1945년 이곳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잠깐 서울 생활을 한 것 말고는 인근 대도시 대구에서 오래 터잡고 살아온 삶의 이력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문득, 한국 시단의 현재를 돌아보면 거기엔 예기치 못했던 '지역시대' 또는 '지방시대'가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 모두 서울에 쏠려 있는 이 지독한 '중앙집권'의 나라에서 유독 시 분야에선 큰 시인, 뜨거운 시인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최근 만났던 한 문학평론가가 여전한 사회·문화적 서울 쏠림 현상을 지적하면서도 "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을 정도다.

물론 영남지역에도 이런 경향을 증명하는 시인들이 꽤 있는데, '문인수'라는 이름이야말로 그런 흐름에서 앞자리를 달리고 있는 극명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고향 마을에서 만난 문 시인은 넓이가 아니라 좁음을 말했다. 초전면 대마마을 시인의 고향집 마당에서 그는 말했다. "내 시의 뿌리는 아직도 이 집에 있습니다. 저의 시 '심우도'에 나오는 외양간은 바로 저 건물에 있었습니다. 저 별채는 우리 5남매가 모두 신방을 차렸던 장소이고, 이 아랫채는 6·25 폭격 때 무너졌지만 아버지께서 신축하고 형님께서 증축한, 우리 집의 유서가 담긴 곳이죠." 그렇게 생가를 중심으로 그의 '고향'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동심원을 그리며 확장된다.

"집 근처를 흐르는 백천(白川)이 있는데 내 시에서는 흰내라고 쓰곤 하지요. 저기 조금 멀리 봉우리가 보이죠? 정식 표기는 방올음산인데 성주 사람들은 방울암산, 그걸 또 발음 편하게 줄여서 바~람산이라고 합니다. 내 시의 원형이 녹아있는 고향은 그 정도입니다. 나는 내 고향의 범위를 좀 좁게 잡습니다." 시인이 태어나고, 유년을 보내고, 시의 씨앗을 심었던 집과 동네를 걸어보는 것은 역시 문학기행의 백미였다.

'황소 한 마리가 외양간을 꽉 채우고 엎드려 있는 것만큼 마음 든든한 광경도 없을 겁니다./그날 밤 따라 검둥이란 놈이 유난히도 짖어댔습니다. 한 십 년 먹인 수캐였는데, 매우 영리해서 사람의 말귀를 잘 알아들었지요. 한 가지, 이 검둥이란 놈에겐 기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놈의 잠자리였는데요, 마루 밑에 마련해 준 제 잠자리는 거들떠도 아니 보고 늘 외양간에 가서 잤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그의 긴 시 '심우도'(시집 '홰 치는 산' 수록)는 한 시인에게 화인(火印)처럼 이미지가 박혔을 때, 그 이미지를 오래 묵혔을 때, 그리고 거기에서 마침내 뭉게뭉게 시가 피어오를 때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절묘하게 보여준다. 바로 그 외양간이 이 집의 저기에 있었다.


■ 세상과 '맞장'을 떴던 아버지의 기억

한옥이 잘 보존된 민속마을인 한개마을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가 독자들 앞에서 다시 기억을 들춰냈다. "바로 이쯤이었을 겁니다. 6·25 때였어요. 아버지는 노모를 수레에 태워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바로 이 한개마을 입구에서 수레가 그만 뒤집어졌지요. 그 순간 아버지는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피란가지 않겠다. 여기서 전쟁을 맞이하겠다. 저희(적군)들도 부모가 있을 것 아니냐'. 그 길로 수레를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답니다." 문 시인은 이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는 그때 이 세상과 '맞장'을 뜨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인간이 존재를 걸고 세상과 맞장을 뜨는 결단을 내렸다. 그 주인공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문 시인이 이 대목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쉬!' 중·시집 '쉬!' 수록)

한개마을 입구에는 콘크리트 포장을 뚫고 나온 바위가 있다. 박신자 문화해설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개마을은 명당인데, 마을을 한바퀴 돈 좋은 기운이 마을에서 빠져나가버리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하던 바위였다. 한때 마을길을 넓히면서 이 바위를 없애려 했는데 마을사람들이 지켜냈다. 하지만 완전히 지키지는 못해 일부는 콘크리트 포장 속에 묻혔고 이렇게 끝부분만 남았다."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이 있을 정도로 예부터 명당으로 이름났던 성주는 '지키는 정신'이 돋보였다. 잘 보존돼 사람들의 쉼터 구실을 하는 '성밖숲'도 그렇게 지켜졌을 것 같다. 눈과 마음이 섬세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 문 시인이 고향의 범위를 작게 잡는 것도, 그의 시가 여전히 고향을 감싸고 있는 것도 이렇게 배운 지키는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학기행 일원이 되어 부산에서 그를 보러 간 고향후배 원무현 시인의 손을 잡으며 그는 말했다. "독자들이 멀리서 찾아와 준 것, 이것이 시인에겐 영광입니다."

신문학기행 참가 문의=동보서적 (051)803-8000, 부산문화연구회 441-0485 www.문학기행.kr


▶문인수 시인은 = 1945년 경북 성주군 초전면 대마마을에서 태어났다. 1985년 마흔의 나이로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 '쉬!' '배꼽' 등의 시집을 펴냈으며 김달진문학상 대구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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