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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 경계와 소통의 고갯길 <18> 하동 황토재

소장수·비단장수 하동~사천장 오가던 유일한 길목

경남 하동 횡천면과 북천면의 경계 이뤄

고개 주변 황토밭 많아 황토재로 명명돼

80년대까지 소장수들 소 몰고 고개 넘어

현재 황토재 밑으로 터널 공사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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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북천면과 횡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황토재 초입. 예전 보부상들이 하동과 사천을 오가던 유일한 지름길이다. 김세주 기자
황토재는 경남 하동군 횡천면과 북천면의 경계를 이루며 사천시 곤명면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이다. 지리산 자락인 이 고갯길은 예전에 하동과 사천에 우시장이 서는 날이면 농민들이 소를 몰고 넘나들던 길목이었다.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진주 IC를 지나 남강변으로 가다 보면 경남예술회관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남강다리 밑을 지나면 국도 2호선(부산~목포)으로 연결된다. 이 길을 따라 20여 분가량 가면 사천과 하동의 경계지점인 하동 북천면사무소와 코스모스역이 있는 직전리 계산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계산마을과 인접한 직전마을은 전국 최대의 꽃 군락지다. 이 마을 30만 ㎡에 이르는 꽃단지에서는 가을이면 코스모스와 메밀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에만 70 만 명의 관광객이 축제를 보기 위해 이 마을을 방문했다.

황토재는 이 마을에서 하동 방향으로 2㎞ 가량 가다보면 만난다. 고갯길은 수우재라고도 불리는 데 산의 형상이 황소가 웅크리고 잠자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갯길 동북쪽 방향의 토질은 고령토이고 남북쪽은 황토밭이다. 지금도 산 주위로 황토밭이 많아 황토재라는 이름의 유래가 됐다.

구불구불 이어진 고갯길 10.5㎞는 2차선 도로로 포장됐지만 산허리로 돌아가는 길은 지금도 험난하다. 황토재는 예전에 보부상들이 하동 진주 사천시장을 오가는 지름길로 당시엔 이길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황토재가 있는 산 이름은 마안산이다. 옛날에 장군이 말을 타고 지나가다 정상에서 말 안장을 내려놓고 쉬었다고 해 붙여졌다. 마안산은 갑오농민전쟁 당시 옥종 고성산성에 있던 동학군들이 항거한 곳이다. 산성과 봉화대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황토재 아래 예전 솔병이라 불리던 마을에서 출토된 빗살무늬청자와 고려청자는 국보급으로 진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하동군 횡천면 여의리에 사는 김용우(69 전 횡천면장) 씨는 "1980년대 까지만 해도 하동 우(牛)시장에서 사천 우시장까지 소장수 한사람이 서너 마리씩 몰고 황토재를 넘나들었고 비단장수들도 이 길을 다녔다"고 말했다. 특히 비단장수들이 고갯길을 혼자 넘나들 때면 강도가 숲속에서 나타나 돈을 강탈하고 살인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마을사람들이 숨진 비단장수를 위해 고갯길에 비단장수 묘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이 묘는 임도개설로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김 씨는 20여 년 전만 해도 황토재 고갯길은 사람 보기가 어렵고 가옥 한 채 없는 을씨년스러운 곳이었지만 이젠 고갯길 정상에 주유소가 들어섰고 사람과 차들이 쉬어가는 쉼터로 변했다고 말했다. 고갯길 곳곳에 옛 길손들의 애환이 서린 주막집이 들어서 성황을 누렸고 소나무 숲이 울창했지만 이제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고갯길마다 남다른 사연을 간직하고 있듯 황토재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말기 철종 때 북천면 남포동에 살던 최중길이라는 농부가 가난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날 하동장에 가는 도중 황토재에서 지게를 내려 두고 용변을 보다 오줌줄기로 흙이 패이면서 뜻하지 않은 횡재(엽전뭉치)를 만났다.

최 씨는 엽전뭉치를 지게에 짊어지고 가다 인근 산속에 묻었고 하동장에서 돌아오면서 다시 파내 집으로 돌아온 뒤 그 돈으로 논밭을 사서 천석군 거부가 됐다는 얘기가 지금도 전해온다. 황토재에서 발견된 엽전뭉치의 주인은 소를 팔고가던 사람에게서 빼앗아 엽전이 너무 많아 옮기지 못하고 이 곳에 숨겨뒀는데 최 씨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것이다.

조선말기 이름난 학자인 계남 최숙민이 최 씨의 아들이다. 최 씨의 두 아들인 계남과 식민은 선비가 되었고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한 진주판관 최기필 선생의 7세손이다.

이젠 고갯길 주변도 개발 때문에 점차 옛 모습이 사라질 위기다. 국도 2호선인 이 구간 황토재 밑으로 터널을 뚫어 하동으로 연결하는 공사가 연차사업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차량들이 제법 지나지만 터널이 뚫리면 황토재도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황토재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다.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사는 문병이(77·하동문화원 향토문화사 연구위원) 씨는 황토재에서 유명세를 뺄 수 없는 곳으로 구정삼거리를 꼽았다. 구정삼거리는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원양마을에 있으며 삼천포에서 시작해 전남지방으로 가는 지름길의 아홉번째 정거장이어서 구정(九停)이란 이름이 붙었다. 예전에는 이 곳에서 상인들이 말을 타고가다 쉬어가거나 바꿔타고 갔다. 지금의 버스 정류장 역할을 한 셈이다. 이 곳은 요즘도 시외버스 하차장이 있어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 북천면 직전리 이병주 문학관

- 국제신문 주필 지낸 작가 기려…사시사철 문인 및 관광객 발길

황토재 나들목인 경남 하동 북천면 직전리에는 이 고장 출신인 고 나림 이병주 선생을 기리는 이병주 문학관(사진)이 들어서 있다.

이병주 문학관(부지 2992㎡)은 두 개의 삼각형 건물이 기역 자로 꺾여 연결된 형태로 건축양식이 독특하다. 이 문학관은 하동군이 지난 2005년 32억 원을 들여 공사에 들어가 지난해 4월 개관했다. 2층 규모의 문학관에는 전시실과 강당, 창작실 등이 있다.

이 선생의 많은 저작물과 유품 등이 전시된 이곳에는 사시사철 문인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학관 전시실에는 연대기 순서로 선생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관련유품과 작품 등이 소개글과 함께 전시돼 있다. 원형으로 구성된 전시실에는 국제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을 역임하던 때의 언론인 이병주의 모습과 마흔네 살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후 타계할 때까지 27년 동안 한 달 평균 1000여 매를 써내며 초인적인 집필활동을 보여준 작가 이병주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이병주 선생은 문단 등단 이후 관부연락선, 지리산, 남로당 등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80여 권의 방대한 장편소설을 남겼다. 그가 '기록자로서의 소설가' '증언자로서의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곳에는 선생의 대표작인 지리산의 한 장면을 모형으로 만든 디오라마(diorama) 와 선생이 원고를 집필하고 있는 모습의 디오라마, 그리고 영상자료들도 전시돼 있다.

문학관 측은 개관 이후 지금까지 어린이 글쓰기 지도, 학술세미나, 이병주 소설 낭독회, 이병주 국제문학제, 문학강연회 등 선생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문학관에서는 문인들과 문인 지망생인 어린 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선생의 작품세계에서 창작의 감(?)을 떠올리기 위해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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