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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의 혼 사람의 길을 묻다 <1> 김민호 영산대 동양무예학과 교수

나는 꿈꾼다, 무술이 체육·놀이로 뿌리내리는 그날을 …

"무술과 학문은 육체와 정신같이 불가분 관계"

佛서 무예문화 다룬 논문으로 인류학 박사학위

쿵후·우슈·태껸·호신술 등 합이 17단 '고수'

"무술 가치는 남들보다 너그러움에서 발현돼"

"애들이나 하는 운동 인식 고착화 안타까워"

동양무술, 학문으로 재정립 보급 당찬 포부

  • 강춘진 기자 choonjin@kookje.co.kr
  •  |   입력 : 2010-03-11 19:11:2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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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인생을 살았던 무술인. 그들은 예인이다. 누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인 대접을 받았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의 삶에는 혼이 있다. 남다른 애환도 많다. 수련 과정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치열했다. 때로는 대중의 스타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다. 전통무예라는 좁은 틀에 갇혀 저변확대에 소홀했다. 무술인들은 잊혀진 사람들로 전락했다. 한국 무예는 도태 중이라는 뜻이다. 반면 서구 무예는 발전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무예가 생활체육, 사회체육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무인의 길을 고집했을까. 이 시대 무술인들의 삶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전통무예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본다.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가 선정한 '무인들'의 생생한 현장 목소리를 전달하는 자리다.


김민호 교수가 태극권 소림권 당랑권 팔괘장 등 각종 중국무술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1994년 7월 프랑스 파리 남서쪽에 위치한 보르도 서부 비스카로스 해안. 한국의 한 유학생이 이곳에서 놀다가 해류에 휩쓸렸다. 귀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이 유학생은 수영을 전혀 못한다. 점점 힘이 빠지고 파도의 기세는 맹렬했다. 그에게 파도는 쓰나미처럼 무서운 존재였다. 죽음을 보았던 것이다. 그동안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포기할 것인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인가. 후자를 택했다. 양쪽 다리에 힘을 모으고 기의 흐름을 조절하면서 덩달아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재주'를 발휘했다. 그때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는 그 사람의 새끼손가락을 잡았다. 살기 위해 이 사람을 잡고 몸부림치다 자칫 같이 익사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준 순간이다. 잠시 후 해안구조대가 나타났고, 그는 헬기를 타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무술 고단자(쿵후 6단, 우슈 4단, 태껸 3단, 호신술 4단) 김민호(50·영산대 동양무예학과)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소 갈고 닦은 무술 수련이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삶의 현장으로 다시 오게 한 것 같아요."

김 교수의 얼굴에서 무인의 이미지를 읽을 수 없었다. 나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앳된 얼굴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다. 현재 국내에서는 드문 학과인 영산대 동양무예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무예문화를 다룬 논문으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점이 이채롭다.

"무예를 체계적으로 학문화해 세상에 널리 보급하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는 그러나 교수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수련 과정에서 무예의 깊고 높은 영역이 존재한다는 점을 체득했다. 그 영역은 현대인의 삶에 긍정적으로 공헌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문화로서 무예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정신적인 세계와 육체적인 영역이 한데 어우러지는 무술은 이제 평생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입니다." 아직은 일반화하지 않은 시각이다.

■공부와 무술은 같은 이치의 영역…새로운 시선 필요

김 교수는 '괴력의 사나이'가 아니었다. 조용한 성격에다 조심스러운 말투는 학자 특유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아내와 딸 아들을 사랑하는 가정적인 남자다. 믿거나 말거나 '다른 여자'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한 기회에 합기도를 접했다. 직업군인인 부친의 잦은 전출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그에게 합기도는 싸움의 기술로 사용됐다. 중학교 시절에는 싸움이 하루의 일과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얌전한 사고뭉치'였다고 평했다.

계명대 불문학과에 진학한 후부터 중국의 전통무술인 쿵후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때부터 무술 수련을 시작했다. 우슈도 배웠다. 당시는 중국에서 우슈를 격투기 형태의 스포츠 종목으로 보급하기 전이었다.

1985년 8월 프랑스로 유학을 간 그는 무술 수련의 새로운 묘미를 체험할 수 있었다. "유학 생활의 고독과 공부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수련을 했는데 주위에서 무예 지도를 권유했습니다." 그렇게 프랑스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졌다. 1987년부터 보르도대학 학생들을 위한 도장과 사회체육센터 등에서 쿵후와 우슈를 지도했다. 그는 인류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무예 지도자로서의 두 가지 생활을 병행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과 다른 점을 몸소 느꼈다.

"한국에서 무술을 수련할 때는 지도자가 시키는 대로 의문을 달지 않고 따랐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지적 호기심을 갖고 많은 질문을 던졌어요." 그들은 생활체육으로 정착된 무술을 꾸준히 수련하면서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다른 '스승'을 찾아서 배우는 열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론적 공부와 수련을 함께하지 않고는 얼마 후 그들을 지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공부와 수련으로 보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수련 시간은 매일 6시간 정도. 명상수련과 신체수련을 동시에 했다.

"많은 지도자를 만났어요." 그는 프랑스에서 10년 동안 '새로운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프랑스인 베트남인 중국인 일본인 등 다양한 나라의 무인들로부터 중국무술인 태극권 팔괘장 형의권 대성권 팔괘태극권, 러시아 무술인 삼보와 호신술 등을 두루 배웠다. 그 나름대로 무술의 원리에 눈을 뜬 것이다. "학문(공부)과 운동(무술)은 같은 이치의 영역이다."

"수련 과정에서 이 시대 무인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생겼어요." 그가 얻은 결론은 "약육강식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지 않고, 위급한 상황이 왔을 때 주위 사람을 같은 상황으로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김 교수가 프랑스에서 체득한 무술에 대한 생각의 옳고 그름을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전통을 고집하며 오직 한길을 고집하는 무인의 외길 인생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술의 위기 시대. 그를 통해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무인들의 수련 과정과 정신 세계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평생 건강을 다지는 생활체육으로 정착되는 날 갈망

그는 2001년 9월 영산대 동양무예학과 교수로 임용될 당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길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무술 수련과 학문은 별도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특히 사회적으로 무술은 어린이들만 하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고착됐다. 김 교수는 이를 '기형적인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무인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국내 무인들은 지도자가 되면 보통 무술을 접고 밥벌이 방편으로 도장 등을 운영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물론 입시제도 등 한국의 특수한 교육시스템에도 원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술은 평생 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무인들이 일반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무술을 할 엄두도 내지 않는 풍토가 고착됐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무술 수련은 단순한 신체활동이 아닙니다." 여기서 신체활동은 스포츠를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놀이나 스포츠로 인식되는 무술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월이 가면 우리나라에서도 수련 과정 등이 생활체육으로 정착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학자 무인인 김 교수의 꿈은 당차다. 동양에서 발생한 무술을 서양에서 파생된 체육학이라는 학문으로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덕은 강자만이 베푼다'. 그는 이 말을 인용하면서 이런 말을 던졌다. "남들보다 더 너그러워야 싸움하는 기술을 제대로 익힐 수 있습니다." 무술의 가치를 압축한 말로 들린다.

'무인의 세계'는 별났다. 맨손으로 멧돼지를 잡거나 쇠나 돌을 단번에 두 조각 내는 무인들이 세인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전설이 돼 버렸다. 그들의 수련 과정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일반인들도 평생 건강을 다지는 방법으로 무술을 하는 시대를 그는 꿈꾼다.


#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는

- 부산 기반 전국 전통무예인 참여
- 무예발굴·계승… 공익활동도 앞장

사색에 잠겨 대나무 숲을 걷고 있는 김민호 교수. 김성효 기자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회장 유상호)는 전국 최초로 생긴 민간 전통무예 단체이다. 2005년 3월 부산을 기반으로 전국의 전통무예인들이 참여하는 임의단체로 출발한 이 단체는 지난해 3월 세계사회체육연맹 회원단체로 가입했다. 올 1월에는 부산시 비영리 민간단체(제505호)로 등록했다.

회원들은 전통무예는 물론 청소년과 여성들이 위기에서 극복하는 호신술 강의 등 시대 흐름에 맞는 무술인들의 활동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와 함께 폭력예방 활동과 환경보호 활동에다 학교폭력 퇴치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이 단체는 또 무예인들과 문화예술인, 시민단체 등과 연대사업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공익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통무예 발굴과 계승 및 문화재 지정 사업 등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세계전통무예대회와 각종 문화예술 행사 등과 연계사업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무술이 우리 사회의 생활체육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활동의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유 회장은 "전통 무예인들의 권익보호 등 구심점 역할을 하는 단체로서 무인들의 삶과 희로애락을 시대 흐름에 맞게 조명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그는 지난 2009년 5월 이 단체 회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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